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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 불타관 - 3 제불의 시간적, 공간적 이해

香積 2010. 10. 21. 07:30

3 제불의 시간적, 공간적 이해

경전에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부처님을 설명한다. 그중 시간적, 공간적 입장에서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 항목에서 다룰 내용이다.

1 과거불, 미래불

부처님의 시간적 분류는 과거불과 미래불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과거불의 경우 과거칠불(過去七佛) 사상을 중심으로 한 것과 그 외의 것이 있다. 먼저 과거칠불에 관한 전형적인 소개는 남전 장부 경전의 ≪대불전경(大佛典經)≫에서 볼 수 있다. 그곳에는 비파시, 시키, 베싸부, 카쿠산다, 코나가마나, 카싸파, 고타마 등의 일곱 분의 부처님이 출현한 시기, 출신, 성씨, 수명, 보리수, 최고 제자, 제자의 모임, 최고의 시자(侍者), 부모, 탄생지 등의 열 가지 측면에서 소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비파시 부처님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91겁 전에 출현하셨으며, 왕족 출신이며, 성씨는 콘단냐였으며, 수명은8만세를 누리셨고, 파탈리라는 보리수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최고의 시자는 칸다와 티싸였다. 그리고 제자들의 모임은 모두 세 번 있었는데 한 번은 번뇌를 다한 제자가 육백 팔십만 명으로, 또 한번은 십만 명으로, 또 한 번은8만 명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최고의 시자는 아소카였고, 아버지는 반두마 왕이었고 어머니는 반두마티 왕비였고, 탄생지는 반두마티 왕도였다.

마찬가지로 역사 속의 부처님을 이러한 조목에 맞추어서 살펴보면 부처님은 현재의 겁에 출현하셨으며, 왕족 출신이며, 성씨는 고타마이며, 수명은 백 세 안팎이고, 아쌍타라는 보리수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최고의 제자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이다. 그리고 제자들의 모임은 한 번 있었는데 번뇌를 다한 제자가1,250인이었다. 그리고 최고의 시자는 아난다이고, 아버지는 숫도다나 왕이고 어머니는 마야 왕비이고, 탄생지는 카필라바스투 왕도이다.


이러한 과거칠불에 관한 기사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부처님도 과거불의 범주 속에 넣어 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부처님의 제자들에 의해 부처님의 말씀이 결집(結集)되는 시기는 이미 부처님이 열반한 이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출현한 시대[劫]을 현겁(賢劫)이라고 특별히 부른다. 이 현겁의 본래의 뜻은 ‘경사스러운 겁’이라는 뜻인데 왜 이 겁의 이름을 그렇게 불렀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 겁에 무려 네 분의 부처님이 출현하셨고, 또 미래에 멧테야[彌勒] 부처님까지 출세할 것이므로 그렇게 이름붙인 듯하다.

그리고 과거칠불을 소개할 때 나타나는 조목 중에서 반드시 보리수의 이름을 명기하고 있다. 그것은 수행과 깨달음을 위해서는 적절한 ‘도량’이 있어야 함을 상징적으로 전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래불인 멧테야 부처님의 보리수는 용화(龍華)인데 그것을 용화 ‘도량’이라고 표현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과거칠불 외에도 과거세에 훨씬 많은 부처님이 출현했다고 여러 경전들은 다투어 설한다. ≪불종성경(佛種姓經)≫에는 과거칠불까지 포함하여 모두 28분의 부처님이 출현하였다고 하면서 그 자세한 내용을 게송으로 읊고 있다. 그곳에 보면 최초의 부처님이 지금으로부터 약4아승지겁 전에 출현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부처님의 이름이 탄항카라(作愛)이다. 그리고 같은 겁에 메당카라(作慧), 사라낭카라(作歸依) 부처님이 출현하고 그리고 디팡카라(燃燈) 부처님이 출현한다고 전해준다. 이 중 디팡카라 부처님은 유명한 부처님인데 북전(北傳)의 ≪수행본기경≫에 의하면 지금부터 91겁 전의 부처님으로 묘사되어 있어 주의를 요한다.

이 외에도 과거불의 관념은 대승경전 속에서 더욱 활발하게 나타난다.예를 들어 ≪불설무량수경≫에서는 정광 여래로부터 세자재왕 여래에 이르기까지 54분의 부처님이 과거의 시간적인 흐름 속에서 출현하셨던 것으로 설해져 있다.

과거불에 이어 미래불 사상도 초기의 불교 자료들에 나타난다. 멧테야 부처님은 이 현겁(賢劫) 중에 ‘상카’라는 전륜성왕이 출세하여 통치하는 수명8만4천 세를 누리는 세상에서 출현한다고 설한다.

사람들이8만4천 세가 되었을 때, 멧테야라는 그렇게 온, 동등한,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은, 밝힘에의 진행을 완성한, 잘 간, 세간을 아는, 더 이상 없는, 사람을 길들이는, 천신과 인간의 스승인, 깨달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신다. 그 부처님은 천신, 마신, 범신을 포함한 이 세계와 수행자, 사제를 포함한 사람 등 모든 천신과 사람을 포함한 세계를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아 가르치신다. 그 부처님은 처음도 좋고 가운데도 좋고 끝도 좋으며 의미와 문구를 갖춘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온통 충족되고 순결하고 청정한 수행을 드러내신다.

(南傳 長部 ≪轉輪聖王經), ≪增壹阿含經≫ 제45권)

이처럼 많은 과거불과 그리고 미래불을 이름까지 정확히 명기하여 설하는 것은 무엇보다 부처님의 탄생이 무한한 과거로부터 계속되어 끊이지 않으며 그것이 미래에까지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데 일차적인 뜻이 있다. 그 자세한 음미는 조금 뒤에 공간적인 부처님에 관한 것과 함께 하겠다.


2 공간적 배열

시간적으로 과거불과 미래불을 설하는 것과 함께 지금 이 순간 공간적으로 다른 방위에 존재하는 부처님들도 설한다. 그 대표적인 부처님이 서방에 위치한 아미타 부처님과 동방에 위치한다는 아촉불이다(≪大寶積經) <無量壽如來會> <不動如來會>). 밀교 경전에 보면 태장계(胎藏界) 만다라의 경우 중대팔엽(中臺八葉)을 보면 중앙에 대일(大日) 여래가 있고 동방에 보당(寶幢) 여래, 서방에 아미타 여래, 남방에 개부화왕(開敷華王) 여래, 북방에 천뢰고음(天雷鼓音) 여래가 배열되어 있는데, 이것은 실제 부처님이 공간적으로 그곳에 존재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밀교 교리의 특수한 표현법에 의한 일종의 서술적 배열이다.

그러나 정토부 경전에서 볼 수 있는 아미타 부처님 또는 ≪아촉불국경≫에 보이는 아촉불의 경우는 실제로 그 방위에 그 부처님이 현존하고 있다는 뜻을 강력하게 나타낸다. 우리가 그것을 사실로 믿는 데는 상당한 의미가 있으니 그것은 불교 신앙의 핵심이다. 우리는 이 단원의 마지막에서 그 신앙의 타당한 근거를 보다 구체적으로 추구해 보겠지만 여기서는 ≪법화경≫의 입장에서 ‘공간적으로 현재 수많은 부처님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 가지 설명하고자 한다.

≪법화경≫에서는 시간적인 측면에서 수많은 과거의 부처님이 소개될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부처님에 있어서도 “여래의 수명이 무량하다.”<如來壽量無量品>는 주목할 만한 사상을 개진하고 있다. 이처럼 부처님 한명 한명의 수명이 이미 무한하다면 우리는 세계 속에 수많은 부처님이 공간적으로 현존하다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심지어 부처님도 그 수량이 무한하므로 지금 어디에선가 부처님의 교화사업에 열중하고 계신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부처님들이 공간적으로 현존하며 중생제도에 임한다는 것은 여래의 시간적 수명이 무량한 데서 오는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그런데 ≪법화경≫은 부처님들이 이처럼 공간적으로 공존할 수밖에 없음을 여래수량의 무량함에서 이끌어 낸 뒤 그 공간적 배열 자체에 한 가지 제한을 둠으로써 더욱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법화경≫에는 다보(多寶) 여래가 출현하는데 굳이 다보탑이라는 장치를 타고 나타난다. 그리고 다보 여래가 출현하기 전 수많은 여래들을 초빙하는데 그 모든 여래들이 직접 오지 않고 분신(分身) 여래들을 보낸다. 그리고 분신 여래라 하더라도 석가모니 부처님과 직접 만나지는 않고 시자를 보내서 안부를 전한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두 부처님이 동일한 공간을 함께 점유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그런 경우를 극히 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왜일까? 아마도 광대무변한 이 우주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한 공간에 두 부처님이 있으므로 중생 교화의 기회가 줄어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됨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한 세상에는 두 분의 부처님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일세일불주의(一世一佛主義)라고 한다. 이것은 부처님들의 영역 분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보다 많은 중생을 구제하려는 부처님들의 약속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제불의 시간적, 공간적 배열을 살피면서 부처님들의 교화는 한시도 쉬지 않으면서, 서로 겹치는 일조차 없이 보다 넓은 지역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 가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그러기에 이 세계는 중생 교화를 위한 수많은 부처님의 공동된 일터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