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타전의 이해
불교는 부처님의 종교다. 중생을 위해 부처님이 존재하므로 중생의 종교이기도 하나 그 중생이 결국에는 부처가 되어야 하므로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불교의 모습은 역시 부처님의 종교인 것이다. 이제부터 그러한 부처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때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부처님의 전기다. 왜냐면 부처님의 전기는 부처님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객체적 대상으로서 부처님이라는 주제에 대해 언급하신 것이 아니라 부처님 스스로가 부처님 스스로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므로 그 의미는 부처님이라는 존재에 대한 단순한 교리적인 언급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1 전생, 탄생, 출가
우리는 불타전을 살피면서 부처님의 전생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그런 전생 이야기는 매우 많아 아예 ≪본생담(本生譚, Ja taka)≫이라는 이름으로 집성되어 있기도 한데, 그 여러 이야기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수기(授記)라는 사건이다. 경전에는 당시의 인도인들이 누구나 부처님에 대해서 “단 한 생의 육년 수행을 통하여 부처님이 될 수 있을까?”(≪修行本起經))하는 의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의문은 상당히 의미있는 의문이다. 부처님은 인간이 지닌 일체의 궁극적, 형이상학적, 종교적 문제에 대해 완벽한 해답을 얻어낸 분이거니와 단 육년 정도의 수행으로 과연 성취될 수 있는 경지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 당시뿐만 아니라 우리는 오늘날에도 육년 정도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을 많이 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부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아님을 볼 때 부처님의 성불에는 무언가 이 생에서의 육년 수행 외에 다른 특별한 원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의문에 대해 부처님이 내린 답변은 ‘91겁 전에 연등불(燃燈佛)로부터 오늘의 시대인 이 사바세계에서 부처를 이룰 것이라는 기별(記別)을 받고 그 이후부터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비로소 이 생에 수기받은 대로 성불하였다’는 것이다. 즉 연등불의 수기와 91겁 동안의 수행 그리고 이 생에서의 마지막 수행이 원인이 되어 성불이라는 결과를 얻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우리는 불타전의 시작을 이 수기라는 사건으로 잡아야 할 정도로 이것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수기가 ≪법화경≫이라는 대승경전의 주요 사상이 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 생에 부처님이 탄생할 때에는 여러 가지 신화론적인 사건들이 많이 언급된다. 예를 들어 탄생시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뿌렸다든지 일곱 걸음을 걷고 사자후를 하였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내용을 단순히 성자의 탄생을 묘사하는 문학적인 표현으로만 봐 넘겨서는 안 된다. 그 속에는 부처님의 탄생이 가지는 의미와 앞으로 전개될 일생에 대한 중요한 교리적인 암시가 신화론적인 입장에서 기술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아홉 마리의 용이라고 할 때 왜 그 숫자가 아홉인지도 물어야 하고 일곱 걸음이라고 할 때 왜 하필이면 일곱 걸음인지도 한번쯤 물어 보는 것이 좋다. 숫자의 사용에 있어서 부처님이 지극히 정밀했음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이처럼 탄생에 대한 신화론적인 언급은 모두 합리적인 의미를 지닌 교리로 환원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고 부처님이 출가하기 전 어린 시절에서는 특히 농경제에 참석하였던 일에 주목해야 한다. 그곳에서 부처님은 약육강식의 생존계에 환멸을 느껴 잠부나무 그늘에서 명상에 잠기는데 여기서 색계 초선(色界 初禪)을 성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초선의 성취는 그의 성불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므로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출가 동기를 그의 염세적 성격이나 이웃 강대국과의 정치적 관계에서 찾는 경우도 있는데, 그보다는 죽음과 같은 한계상황에 대한 부처님의 철저한 인식과 당시 인도 사상의 심각한 혼란성에서 그 동기를 찾는 것이 나을 것이다.
2 수행, 성불, 전법
출가 후 부처님은 당시의 인도인들이 널리 실천하던 요가(yoga) 수행과 타파스(tapas) 수행을 최고의 수준에 이르도록 닦았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선 요가 수행에서는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과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는 최상의 경지를 체득한 것으로 부처님에 의해 직접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죽음과 같은 궁극적인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한 것을 알고는 요가 수행을 버리신다. 그런 뒤 타파스 수행으로 들어가는데 타파스 수행이란 바로 우리가 고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시 인도의 고행법은 약73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데 부처님은 그중에서도 가장 고난도인 숨쉬지 않는 고행과 먹지 않는 고행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고 말하고 있다.
부처님은 이러한 모든 수행 특히 고행을 끝내면서 이렇게 선언하셨다.
과거,미래,현재의 어떤 수행자가 고행을 했다고 하나 나의 고행보다 더 격렬하고 신랄하고 찢는 듯한 고통의 느낌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토록 격렬하고 신랄하고 찢는 듯한 고행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는 성스럽고 거룩한 진리에 대한 짐작조차 얻지 못하였다. 깨달음을 향한 다른 길이 있음에 틀림없다.
(南傳 中部 經典 ≪菩提王子經))
이렇게 모든 수행을 극도의 수준으로 해보았으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굳이 힘주어 보여주는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의미 중의 하나가 인류의 종교적 방황의 종식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아무리 이곳저곳에서 수행한다고 해도 부처님보다는 그 정도가 낮을 것이고 이런저런 수행을 해보며 방황한다고 해도 그것에서 성취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우리는 유추할 수 있다.
요가 수행과 타파스 수행을 물리친 뒤 부처님은 독자적인 명상에 들어가 드디어 대각을 성취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독자적인 명상의 내용과 대각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독자적인 명상의 내용은 바로 색계 초선으로부터 시작하는 이른바 구차제정(九次第定)으로 설해진다. 그런데 이 색계 초선의 경지를 부처님은 어린 시절 농경제에서의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찾아내고 있다. 그리고 깨달음의 내용은 역시 연기법으로 설해지고 있다(南傳 中部 ≪菩提王者經)). 이것은 비록 초기불교의 자료에 입각한 것이지만 연기법의 외연을 볼 때 십이연기라고 국한하지 않는 한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으로서 연기법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본다.
성불한 뒤 부처님은 전법에 나선다. 부처님의 전법에는 첫째 오비구에 대한 교화를 주목해야 하고, 둘째 사리불과 목련에 대한 전법, 셋째 마하가섭에 대한 전법을 주목해야 한다. 먼저 오비구에 대한 교화는 일종의 유아론(唯我論, solipsism)의 극복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오비구에 대한 전법이 성공함으로써 부처님의 깨달음이 비로소 보편성을 띤 진리에 대한 깨달음으로서의 위상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리불과 목련에 대한 교화는 부처님의 지혜와 신통이 완전히 전달됨으로써 특히 교리(解)의 측면에서의 완성체가 전달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하가섭에 대한 교화는 부처님의 복덕과 청정행이 완전히 전달됨으로써 수행적 측면(行)의 완성체가 전달된 것을 의미한다.
3 열반
부처님의 열반에서는 크게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최후의 유훈이 게으르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지의 멸진으로부터 게으름의 극복으로 일종의 전환을 보이는 것이라고 볼 만하다. 부처님은 성불 직후 중생의 괴로움은 진리에 대한 무지에 기원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열반에 즈음하여서는 중생의 괴로움의 가장 큰 원인은 오히려 게으름에 있다고 지적하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에 제자들에게 ‘게으르지 말고 정진할 것’을 당부하시는 부처님의 부촉에서 우리는 불교라는 종교의 진수를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처님이 열반에 드는 경지로서 색계 제4선을 택한 것도 주의해야 할 점이다. 그 이상의 무색계 선정도 많이 있는데 굳이 색계 제4선에서 열반에 드심으로써 부처님은 우리에게 ‘부처님은 중생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상과 같이 불타전은 아직도 충분히 파악되지 않은 면을 많이 남기고 있다. 부처님의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가장 신뢰할 만한 자료 중의 하나가 불타전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그 깊이 있는 이해에 계속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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