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법신과 보신 그리고 화신불
부처님에 관한 이해는 교학적인 논의가 진행되어 가면서 점점 복잡해져 가는데 그중 이 항목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불신(佛身)이라는 관점에서 부처님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경전마다 불신에 대한 분류나 정의는 다양하기만 하다. 예를 들어 “여래의 몸은 두 가지가 있나니라. 하나는 생신(生身)이요, 하나는 법신(法身)이다.”(≪大般涅槃經) 제34권 <迦葉菩薩品>)고 하며 두 가지 불신을 설하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불신을 세 가지로 분류하는 것과 다르다. 그리고 세 가지 불신을 설한다 해도 역시 다양한 삼신이 제시되는데, 어떤 경우는 삼신을 “첫째는 화신(化身)이요, 둘째는 응신(應身)이요, 셋째는 법신(法身)이다.”(合部 ≪金光明經) 제13 <身分別品>)라고 설해져 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선장부여, 불신에는 간단히 말해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신(報身)이요, 둘째는 응신(應身)이요, 셋째는 진신(眞身)이다.”(≪大乘同性經) 하권)라고 설한다. 그리고 유식학파에서는 “첫째 자성신(自性身)이요, 둘째 수용신(受用身)이요, 셋째 변화신(變化身)이다.”(≪成唯識論))라고 설한다.
이처럼 다양한 불신관은 원천적으로 부처님이 설한 내용이라기보다는, 후세의 교학적인 논의가 더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후세의 견해가 더 많이 반영되었다는 것은 불신관에 대한 언급이 다분히 불교의 역사적 전개를 전제해야 함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 항목에서도 불신관이 성립되는 과정을 살핌으로써 불타론에 대한 교학적 안목을 얻고자 한다.
부처님은 항상 법에 의지하는 수행생활을 강조하셨다. 그리하여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라고 여쭈었 때, 부처님은 “내가 열반한 뒤 너희들은 법(法)과 율(律)을 스승으로 삼아라.”라고 부촉하셨다(南傳 ≪大般涅槃經)). 그러나 제자들은 늘 부처님이라는 인격을 통해 법을 들어 왔기 때문에 부처님이 열반에 든 뒤에도 부처님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처님의 유골(舍利)을 통해 부처님을 느끼려 하였다.
아울러 석가모니 부처님은 열반하셨지만 부처님이 그 분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부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권위를 어떤 형태로든 찾으려 하였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크게 두 가지로 전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부처님과 별개의 인격적 존재로서의 다른 부처님을 찾으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한 부처님 안에서 여러 차원의 부처님을 분별해 보려는 시도였다. 이 중 후자의 것이 이른바 불신론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전자의 차원 곧 부처님과 다른 부처님을 찾으려는 노력이 먼저 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부처님 이전에도 과거의 부처님들이 여럿 있었음을 성립시킨 뒤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의 부처님을 성립시켰다. 그리하여 미래의 부처님이 출현하여 교화를 펼칠 것이라는 신앙이 일어났다. 지금 도솔천에 있는 미륵 보살이 먼 미래(56억7천만 년 후)에 이 세상에 와서 우리를 구제하실 것이라고 본 것이다. 곧 비록 시간적 격차는 있지만 미래불을 통하여 현재 열반하신 부처님의 빈 자리를 보완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미래불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면이 있다. 그리하여 지금이라도 가기만 하면 만날 수 있는 다른 국토의 부처님을 찾게 되었다. 이른바 타방불(他方佛) 또는 타토불(他土佛) 사상은 이렇게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아촉불의 동방묘희세계(東方妙喜世界)와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세계를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타방불 사상을 더 적극적으로 밀고 들어가 시방불(十方佛) 사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타방불은 현재 존재하는 부처님이지만 죽어서 왕생(往生)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따라서 현재 이 세계에서도 우리가 있는 곳에는 어디든지 부처님이 계신다는 사상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화엄경≫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그런 부처님이다. 비로자나는 ‘바이로차나(Vairocana)’라고 하는 인도말의 소리 옮김인데 바로 태양을 뜻하는 말이다. 태양빛이 어디에서나 지금 존재하듯이 이 부처님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가득 차 있다는 불타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 부처님의 내부에서 다양한 차원의 부처님을 인지해 내려는 노력은 우선 색신과 법신의 이신설(二身說)부터 출발한다. 이미 부처님은 스스로에 대해 법신(法身, dhamma-ka ya)을 설하고 범신(梵身, brahma-ka ya)을 설한 것(南傳 長部)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정히 무상한 육신(肉身)으로서의 부처님에 대응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처음에는 제자들도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해서만 이신설을 생각하다가 점차 자연히 모든 부처님께 고루 적용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다른 부처님에게도 이신설이 적용되면 색신은 별문제가 없지만 법신에 서 문제가 발생한다. 곧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신과 다른 부처님의 법신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비로자나불이나 아미타불이 법신(法身)의 위치를 얻게 되고, 그 법신이야말로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있어서 영원한 본체의 몸이 된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 그 스스로는 역사적 인물로 한정받게 된다.
그런데 인도에서 중기 대승경전이 성립할 때쯤 불교 교리에 있어 본체계와 현상계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이것이 이신설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영원한 본체신으로서의 법신과 현실적,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의 색신과의 관계도 다시 정립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법신과 색신으로의 이신설이 법신, 보신(報身), 화신(化身)의 삼신설 사상으로 전개되고 만다. 왜냐하면 이신설에서는 법신의 경우 영원성은 있으나 현실적인 구체성이 없고, 색신의 경우 현실적 구체성은 있으나 무상한 몸이어서 영원성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영원성과 현실적 구체성을 함께 충족하는 부처님을 추구할 수가 있는데 그것을 충족시킨 관점이 보신불(報身佛)이라는 불신관이다. 즉 보신불은 영원한 본체신으로서의 법신과 현실적 구체성을 띤 색신이 통합된 모습의 불신이라고 일단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색신 그 자체에 대해서도 성격을 다소 보완한다. 곧 이신설의 색신은 법신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단순한 현실성을 띤 불신이라는 정태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삼신설에서는 법신불 또는 보신불이 중생 구제를 위해 무상한 현실 세계의 모습으로 화현한 존재라는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상호간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고 역동적으로 이해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불생불멸하는 본체신으로서의 부처님이 법신으로 정립되고, 이 부처님이 중생 제도를 위해 중생의 모습으로 화현한 것이 응신(또는 화신)이며, 그 응신으로서의 부처님이 특별한 수행을 통해 그 과보로써 아예 법신의 영원성을 성취한 것이 보신이라고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법신으로는 대표적으로 비로자나불을 들고, 보신불로는 아미타불을 들며, 응신불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로 들게 된다. 그것은 비로자나불의 광명변조(光明遍照)한 덕성이 모든 부처님께 내재된 본체신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미타불은 스스로 오겁에 걸친 특별한 수행을 통해 수명과 광명이 무량한 경지를 성취하였거니와 그의 수명이 무량함은 구체성을 띤 육신으로 영원히 존재한다는 의미다. 법신의 특성이 영원성인데 그것은 원천적으로 색신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다. 그러나 아미타불은 색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영원성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무량한 수명을 성취했다고 한정하고 있다. 또한 광명의 무량함은 바로 법신인 비로자나불의 덕성이 광명으로 표현되므로 그 무량한 광명을 확보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미타불은 색신을 가지면서도 영원성을 성취했음이 잘 드러나거니와 보신불의 대표를 삼은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할 것이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우리의 중생계에 직접 화현하셨던 역사적인 분이기 때문에 응신불로 대표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에 대한 이해는 그 역사적인 경과를 볼 때 과거불에서 미래불로 그리고 타방불로 전개되고 불신관이라는 측면에서 색신과 법신의 이신설에서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설로 전개된다고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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