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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진리관 - 4 십이연기의 진리성

香積 2010. 10. 21. 07:26

십이연기의 진리성

우리는 이 항목에서 십이연기설을 중심으로 불교의 진리를 음미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미리 주의를 기울일 점이 있다. 그것은 이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일찍이 아난 존자는 “세존이시여, 연기란 깊은 것이며 깊은 곳에서 빛난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아주 눈앞의 것처럼 보입니다.”라고 하며 연기법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말씀드린 적이 있다. 그러자 부처님은 “아난아, 그런 말 하지 말라. 연기는 깊은 것이고 깊은 곳에서 빛난다. 아난아, 사람들은 이 법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설하셨다. 이처럼 연기의 법칙성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이루어야 함을 미리 주의해야 할 것이다.

1 연기의 법칙

우리는 보편 타당성과 검증 가능성이라는 진리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인과율과 인연의 법칙 그리고 상의상관성이라는 법칙성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인과율과 인연의 법칙과 상의상관성이라는 세 가지 법칙성이 통합되어 하나의 법칙성으로 부처님에 의해 발견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연기의 법칙이다. 우선 연기의 법칙은 전체적으로 인과율을 바탕에 둔다. 그것은 연기의 법칙이 인간 존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진리적 규명을 근본적인 목표로 하면서 무엇보다 인간의 자발적인 심신의 활동을 모든 사건 전개의 근본 원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의 법칙은 인연의 법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연(緣)’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부각하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연기는 그 어원적 해석에서도 ‘연(緣)하여 함께 일어남’으로 옮겨지 듯이 우선 ‘연한다’는 사건을 크게 중요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실제 죽음이라는 사건의 경우 연의 종류를 단계별 11가지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연기의 법칙은 상의상관성을 연기와 가장 밀접한 법칙으로 삼고 도입하고 있다. 현대의 불교학자들은 경전에서 상의상관성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교설을 찾을 때 아예 십이연기설 속에 나타나는 다음의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곧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雜阿含) 제15권).” 그리고 이것을 연기 또는 상의상관성의 기본 공식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연기라는 법칙 속에는 이전에 발견된 세 가지 법칙이 모두 통합되어 있다. 그러나 연기의 법칙은 이전 법칙들의 단순한 합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들을 요소로 하여 고도로 정밀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괄하는 최상의 법칙성을 표현한 것이다.


2 12연기설의 의미

일체 존재에는 인과율과 인연의 법칙 그리고 상의상관성과 같은 법칙성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법칙성은 개별적인 법과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에 있다. 이처럼 법과 법칙성이 불일불이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체득한 지혜를 부처님은 명(明)이라고 부르셨다. 그런데 명이 있고 없음은 인간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무상한 존재 속에서 상주하는 법칙성을 발견한 자와 그러지 못한 자의 존재 방식이 동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불교의 해답을 십이연기설이 내려 주고 있다.

‘명’과 반대되는 개념을 무명(無明)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무명이 사람에게 있게 되면, 이것을 연하여 행(行)이 있게 되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게 되고,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게 되고, 명색을 연하여 육처(六處)가 있게 되고, 육처를 연하여 촉(觸)이 있게 되고, 촉을 연하여 수(受)가 있게 되고, 수를 연하여 애(愛)가 있게 되고, 애를 연하여 취(取)가 있게 되고, 취를 연하여 유(有)가 있게 되고, 유를 연하여 생(生)이 있게 되고, 생을 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하나의 괴로운 온(蘊)의 집기(集起, 발생)가 있게 된다(≪雜阿含), 제15권). 한마디로 명이 없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괴로움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이 있게 되는 과정을 열두 단계로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 무명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조금 자세히 부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무명은 ‘존재의 자연스런 흐름에 대한 역전(逆轉)의 상태’다. 이것을 연하여 행이 발생하는데 행은 ‘그 역전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결합 작용’이다. 이것을 연하여 식이 발생하는데 식은 ‘결합 작용이 일어나기 전과 일어난 후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식별하는 것’이다. 이것을 연하여 명색이 발생하는데 명색은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공존하는 상태’다. 이것을 연하여 육처가 발생하는데 육처는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을 바탕으로 개체의 주관성이 확립되는 단계’다. 이것을 연하여 촉이 발생하는데 촉은 ‘이미 발생한 다양한 존재들의 부딪침’이다. 이것을 연하여 수가 발생하는데 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총체적인 느낌을 통한 확인’이 이루어지는 단계다. 이것을 연하여 애가 발생하는데 애는 ‘즐거운 느낌에 대한 갈애’다. 이것을 연하여 취가 발생하는데 취는 ‘갈애의 대상을 자기화하는 행위’다. 이것을 연하여 유가 발생하는데 유는 ‘취(取)하여진 대상이 자기가 되어 버린 것’을 뜻한다. 이것을 연하여 생이 발생하는데 생은 ‘오온(五蘊)과 육근(六根)의 나타남’이다. 이것을 연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죽음은 ‘육근과 오온의 붕괴’인 것이다.

이상의 설명은 매우 간단하고 대단히 암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연기법에 관련된 모든 가르침이 깨달음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으므로 우리도 이 정도의 암시를 배푸는 데서 멈출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십이연기의 전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명(明)이 없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괴로움이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종교적 주제인 죽음의 구조와 과정과 실상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최종적인 해명이 바로 이 십이연기설의 한 의미인 것이다.

3 연기법과 죽음의 극복

십이연기설은 인간에게 죽음이 있게 되는 근본 원인을 인간 자신의 법칙성에 대한 무지에 두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죽음이 신의 노여움에 의한 것이라든가, 숙명적으로 결정된 것이라든가, 또는 우연히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보지 못하게 한다. 이처럼 죽음의 근본 원인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생사의 근본적인 극복은 이른바 법칙성에 대한 인간의 무지인 무명의 멸진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무명에서 생사의 발생 과정을 설한 뒤 반드시 무명의 멸진에서 생사의 근원적인 극복이 있다고 하셨다. 곧 “무명이 멸하므로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므로 하나의 거대한 괴로움의 온(蘊)이 멸하게 된다.”(≪雜阿含) 제12권)고 설하셨다. 앞에서 육계설middot오온설 및 사제설에 입각하여 인간 개체의 성립과 죽음의 구조 및 그 극복의 가능성을 살필 때도 십이연기설에 궁극적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육계(六界)는 명(明)에 흡수되고, 오온(五蘊)과 사제(四諦)는 십이연기의 전개 과정과 소멸 과정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