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간 개체의 성립 과정
인간은 철저히 자유로운 존재이니 죽음마저도 인간의 의지로 선택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불교가 그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개체의 성립 과정을 존재의 본질적 구조로부터 유도해 냄으로써 생명에 대한 견해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마음과 물질을 포함한 일체 존재의 본래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을 밝히고 있으니 십팔계설과 육계설이 이 주제에 관련한 기초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었다.
이 중 육계설에 입각한다면 ‘지, 수, 화, 풍으로 대표되는 기본 존재들이 무수히 있는데 이 기본 존재들은 서로 다른 차원의 중층구조 속에 배열되어 주변 존재와의 관계 아래 자유로이 위치를 바꾸며 움직인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 육계의 구조는 지, 수, 화, 풍의 기본 존재들이 자유로이 위치를 바꾸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보통 때에는 자유로이 움직이던 기본 존재들이 어느 순간 차분히 정지할 때도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 집착이 가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즉 한때 멈추게 된 존재들이 이루는 일시적인 ‘형체’를 ‘나(我)’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아집(我執)은 현실에서 내가 나에 대해 가지는 고집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내가 ‘나’라고 할 때에는 두 가지 요건을 요청하고 있다. 하나는 상일성(常一性)으로 한 가지 모습으로 영원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멈추어 있는 형체지만 나라고 집착한 이상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해야 한다는 요청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주재성(主宰性)으로 남은 내 마음대로 못하지만 나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요청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단 집착된 형체에 관해서만큼은 자기 뜻대로 하려는 속성을 지니게 됨으로써 이것을 아집이라고 한다.
이렇게 아집이 가해진 형체는 기본 존재들이 일시적으로 멈추어 있는 상황이므로 대단히 불안한 상태다. 일시적으로 모여 있는 기본 존재들이 흩어지려고 해서 불안한 것이다. 따라서 불안한 느낌이 뒤이어 아집을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바로 이러한 불안한 ‘느낌’이 인간 개체 형성의 두번째 단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안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일단 집착된 존재들은 ‘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불안하지만 집착된 그 존재들을 다시금 나라고 재확인하는, 자기확인으로서의 ‘생각’이 뒤이어 발생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자기확인으로서의 ‘생각’이 인간 개체 형성의 세번째 단계에서 성립한다.
그런데 아집이 가해진 형체에는 나라는 자기확인이 다시 이루어졌다고 해서 불안한 느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라는 재확인이 이루어짐으로써 더욱더 불안해진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붕괴될 것 같은 불안을 없애기 위해 불안의 원인인 움직임이 불가능하도록, 일시적으로 멈추어 있을 뿐 실제로는 떨어져 있는 기본 존재를 하나의 개체로 붙여야 된다는 의도가 이어서 일어난다. 이처럼 붙이려는 의도가 있으면 자연히 ‘결합’이 일어난다. 실지로 떨어진 기본 존재들을 하나의 존재로 결합시키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결합’작용이 인간 개체 형성의 네번째 단계에서 성립한다.
이러한 ‘결합’이 마무리되면 기본 존재들은 하나의 개체가 된다. 그런데 그 개체는 이전과는 모습이 다른 데가 있다. 기본 존재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경우와 하나의 개체로 결합된 형상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전과 비교하여 달라졌다고 파악하는 ‘식별(識別)’이 생긴다. 바로 이러한 ‘식별’이 인간 개체 형성의 다섯번째 단계에서 성립한다.
이렇게 최후로 식별된 개체는 이미 중층적인 구조 속에서 떨어진 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일한 공간에서 단일한 구조의 한 개체로 성립되어 있다. 그런데 단일해진 개체는 역시 주위의 숱한 존재들에 싸여 있고 그들과 작용, 반작용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주변 존재들의 자유로운 변동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붕괴의 위협을 받는다. 그래서 스스로 주위의 존재들을 자신에게 병합시킴으로써 가능한 한 붕괴의 위험을 줄여 간다. 그런 과정에서 개체는 횡적으로 부피가 증대해 가고 필요에 따라 감각기관 등의 생물학적 기관을 갖추게 되어 일반적으로 생물이 탄생하게 된다.
인간이란 그렇게 성립된 생물의 한 부류에 불과하며 인간의 생명도 그런 과정 끝에 정규적인 생명현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 개체의 형성에 무엇보다 근원적인 것은 일시적으로 집착된 물질적 ‘형체’와 그를 지속하기 위해 연이어 발생하는 ‘느낌’ ‘생각’ ‘결합’ ‘식별’ 등의 성립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불교의 오온설은 바로 이러한 내면적 소식을 전해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경전에서는 “다섯 가지 근간[根幹, 蘊]이 있다. 곧 형체[色], 느낌[受], 생각[想], 결합[行], 식별[識]이 그것이다(南傳 相應部 ≪蘊相應)).”라고 설한다.
더욱이 온(蘊)이라고 흔히 번역하는 말이 ‘근원적인 부분’ 또는 ‘근간적인 부분’이란 뜻을 지닌 범어 ‘skandha’의 번역어임을 음미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형체’등의 다섯 가지가 인간 개체의 ‘근간’을 이룬다고 살펴 왔던 앞의 견해는 바로 오온설의 내용으로 적확함을 알 수 있다. 오온설은 흔히 인간 존재의 현상적 구성요소를, 물질과 감수작용과 표상작용과 형성작용과 식별작용으로 이해하게 하는 데 그러한 이해의 저변에도 이상과 같이 인간 또는 중생의 개체 성립과정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이루는 물질 등의 본래적 구조가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로 구성된 중층적 구조임을 살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적 모습은 단일한 덩어리임을 궁금히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오온설을 통하여 원래는 중층적 복합 구조였던 존재가 결국 단일한 구조로 변형되고 마는 과정을 잘 살필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 개체의 형성은 먼저 중층적 복합 구조가 단일 구조로 변형되는 과정과, 그런 뒤 그 단일한 덩어리가 주위의 영향력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증대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나아가 인간의 생명현상도 ‘인간 존재를 종적으로 결합하고 횡적으로 병합하는 힘’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인간은 철저히 자유로운 존재이니 죽음마저도 인간의 의지로 선택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불교가 그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개체의 성립 과정을 존재의 본질적 구조로부터 유도해 냄으로써 생명에 대한 견해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마음과 물질을 포함한 일체 존재의 본래적이고 본질적인 모습을 밝히고 있으니 십팔계설과 육계설이 이 주제에 관련한 기초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었다.
이 중 육계설에 입각한다면 ‘지, 수, 화, 풍으로 대표되는 기본 존재들이 무수히 있는데 이 기본 존재들은 서로 다른 차원의 중층구조 속에 배열되어 주변 존재와의 관계 아래 자유로이 위치를 바꾸며 움직인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 육계의 구조는 지, 수, 화, 풍의 기본 존재들이 자유로이 위치를 바꾸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보통 때에는 자유로이 움직이던 기본 존재들이 어느 순간 차분히 정지할 때도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 집착이 가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즉 한때 멈추게 된 존재들이 이루는 일시적인 ‘형체’를 ‘나(我)’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아집(我執)은 현실에서 내가 나에 대해 가지는 고집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내가 ‘나’라고 할 때에는 두 가지 요건을 요청하고 있다. 하나는 상일성(常一性)으로 한 가지 모습으로 영원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멈추어 있는 형체지만 나라고 집착한 이상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해야 한다는 요청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주재성(主宰性)으로 남은 내 마음대로 못하지만 나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요청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단 집착된 형체에 관해서만큼은 자기 뜻대로 하려는 속성을 지니게 됨으로써 이것을 아집이라고 한다.
이렇게 아집이 가해진 형체는 기본 존재들이 일시적으로 멈추어 있는 상황이므로 대단히 불안한 상태다. 일시적으로 모여 있는 기본 존재들이 흩어지려고 해서 불안한 것이다. 따라서 불안한 느낌이 뒤이어 아집을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바로 이러한 불안한 ‘느낌’이 인간 개체 형성의 두번째 단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불안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일단 집착된 존재들은 ‘나’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불안하지만 집착된 그 존재들을 다시금 나라고 재확인하는, 자기확인으로서의 ‘생각’이 뒤이어 발생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자기확인으로서의 ‘생각’이 인간 개체 형성의 세번째 단계에서 성립한다.
그런데 아집이 가해진 형체에는 나라는 자기확인이 다시 이루어졌다고 해서 불안한 느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라는 재확인이 이루어짐으로써 더욱더 불안해진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붕괴될 것 같은 불안을 없애기 위해 불안의 원인인 움직임이 불가능하도록, 일시적으로 멈추어 있을 뿐 실제로는 떨어져 있는 기본 존재를 하나의 개체로 붙여야 된다는 의도가 이어서 일어난다. 이처럼 붙이려는 의도가 있으면 자연히 ‘결합’이 일어난다. 실지로 떨어진 기본 존재들을 하나의 존재로 결합시키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결합’작용이 인간 개체 형성의 네번째 단계에서 성립한다.
이러한 ‘결합’이 마무리되면 기본 존재들은 하나의 개체가 된다. 그런데 그 개체는 이전과는 모습이 다른 데가 있다. 기본 존재들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경우와 하나의 개체로 결합된 형상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전과 비교하여 달라졌다고 파악하는 ‘식별(識別)’이 생긴다. 바로 이러한 ‘식별’이 인간 개체 형성의 다섯번째 단계에서 성립한다.
이렇게 최후로 식별된 개체는 이미 중층적인 구조 속에서 떨어진 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일한 공간에서 단일한 구조의 한 개체로 성립되어 있다. 그런데 단일해진 개체는 역시 주위의 숱한 존재들에 싸여 있고 그들과 작용, 반작용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주변 존재들의 자유로운 변동이 계속되는 한 끊임없이 붕괴의 위협을 받는다. 그래서 스스로 주위의 존재들을 자신에게 병합시킴으로써 가능한 한 붕괴의 위험을 줄여 간다. 그런 과정에서 개체는 횡적으로 부피가 증대해 가고 필요에 따라 감각기관 등의 생물학적 기관을 갖추게 되어 일반적으로 생물이 탄생하게 된다.
인간이란 그렇게 성립된 생물의 한 부류에 불과하며 인간의 생명도 그런 과정 끝에 정규적인 생명현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 개체의 형성에 무엇보다 근원적인 것은 일시적으로 집착된 물질적 ‘형체’와 그를 지속하기 위해 연이어 발생하는 ‘느낌’ ‘생각’ ‘결합’ ‘식별’ 등의 성립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불교의 오온설은 바로 이러한 내면적 소식을 전해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경전에서는 “다섯 가지 근간[根幹, 蘊]이 있다. 곧 형체[色], 느낌[受], 생각[想], 결합[行], 식별[識]이 그것이다(南傳 相應部 ≪蘊相應)).”라고 설한다.
더욱이 온(蘊)이라고 흔히 번역하는 말이 ‘근원적인 부분’ 또는 ‘근간적인 부분’이란 뜻을 지닌 범어 ‘skandha’의 번역어임을 음미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형체’등의 다섯 가지가 인간 개체의 ‘근간’을 이룬다고 살펴 왔던 앞의 견해는 바로 오온설의 내용으로 적확함을 알 수 있다. 오온설은 흔히 인간 존재의 현상적 구성요소를, 물질과 감수작용과 표상작용과 형성작용과 식별작용으로 이해하게 하는 데 그러한 이해의 저변에도 이상과 같이 인간 또는 중생의 개체 성립과정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이루는 물질 등의 본래적 구조가 서로 다른 차원의 세계로 구성된 중층적 구조임을 살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적 모습은 단일한 덩어리임을 궁금히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오온설을 통하여 원래는 중층적 복합 구조였던 존재가 결국 단일한 구조로 변형되고 마는 과정을 잘 살필 수 있었다. 따라서 인간 개체의 형성은 먼저 중층적 복합 구조가 단일 구조로 변형되는 과정과, 그런 뒤 그 단일한 덩어리가 주위의 영향력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증대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나아가 인간의 생명현상도 ‘인간 존재를 종적으로 결합하고 횡적으로 병합하는 힘’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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