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조사선
참선의 진정한 의미는 태곳적부터 자리 잡고 있는 본래 부처로서의 내 마음자리를 밝히는 데 있다. 이 본래 부처로서의 '참나'는 어느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으며, 허공처럼 청정하고 한계가 없어 풍진에 물들지 않고 손상되지 않는다. 어떠한 가식과 꾸밈도 없고 인위적인 발자취조차 남기지 않는다. 삼라만상과 다투지 않고 서로 어울려 고요한 평화로움만 감돌뿐이다.
세파에 찌들고 시달려 살아가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본래의 성품은 조금도 이지러짐이 없다. 이것을 '본래 마음', '본래 면목' 이라고도 하고 '참나'라고도 하며,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고도 한다.
조사선(祖師禪)은 이러한 자성청정심에 관한 확고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즉 내가 본래 부처요, 완벽하다는 데서 출발하는 수행이다. 따라서 완벽을 향해서 나아가는 수행, 즉 불완전한 나를 완전한 나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완전한 나를 확인해 나갈 따름이다. 중생이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부처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위적인 수행이 아니라 조작과 시비 분별을 떠나기 위한 수행이다.
이렇게 조사선은 우주 만물은 모두 '본래 부처'이며 이미 다 그대로 완성되어 있다는 '본래성불(本來成佛)'을 내세운다. 자기 자신이 본래 부처이니 바로 이 자리에서 자기가 완성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임제 선사는 외친다. "바로 네 얼굴 앞에서 위없는 참사람이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그것을 보라, 보라!"
이러한 임제 선사 같은 분을 조사(祖師)라 한다. 조사란 석가모니 부처님이래 불심을 체득하여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수행력과 안목을 갖춘 선지식을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조사들은 부처님과 같이 위없는 깨달음을 보여준다. 조사들의 위치는 부처님과 다를 것이 없다.
선은 문자 이전의 참마음을 곧바로 보여준다. 선지식은 어떤 매개도 통하지 않고 제자의 눈앞에서 그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제자가 그것을 보고 깨치는 순간 이심 전심(以心傳心)의 미소가 번지는 것이다. 영축산 정상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보이자 오직 백발이 성성한 가섭존자 한 분만 그 듯을 알아듣고 고요히 미소 짓듯이 말이다.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 보인 것은 바로 본래 마음을, 진리를 보여준 것이다. 그 마음을 보면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도리를 일러 '자기 마음을 직관하여 성품을 보아 부처가 된다(直指人心 見性成佛)'고 말한 것이다. 이것이 조사선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특징이다.
조사선에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오간 선문답이 많다. 이 모든 선문답은 스승이 제자에게 보여준 문자 이전의 참마음이요, 본래 면목을 가리킨다. 제자는 선사가 제시한 그 말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알아차리는 순간 깨닫는 것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깨닫는 것, 말끝에 바로 깨닫는 것을 '언하변오(言下便悟)'라 한다. 말을 듣자마자, 어떤 행위를 보자마자그 자리에서 즉각 깨닫는(悟道) 것이다. 이러한 언하변오 또한 조사선의 큰 특징이다. 선종의 2대 조사인 혜가 선사는 달마 선사의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 깨쳤다.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단박에 떨쳐버리고 깨달음을 연 것이다.
이 언하변오와 관련하여 우리는 돈오(頓悟)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돈오란 단박 깨닫는 것이다. 단번에 핵심, 알맹이, 바닥, 샘물, 뿌리로 들어간다. 서서히 차츰차츰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광석화처럼 단박에 완전히 깨닫는 것이다. 인도의 선이 점차로 깨달아가는 선이라면, 중국의 조사선은 이렇게 단박에 깨닫는 돈오를 내건다. 이러한 돈오의 가치를 최초로 표방한 선이 달마 조사로부터 시작된 조사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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