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입문▶/우리도 부처님같이

(2)십악업(十惡業)과 十善業)

香積 2009. 7. 30. 01:35

 

     (2)십악업(十惡業)과 十善業)

 

   인간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불행을 불러올 악업을 일삼는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

   하고 있다. 부처님은 이러한 악업을 열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몸(身業)으로 짓는 세가지 업, 즉 살생(殺生), 도둑질(偸盜), 사음(邪淫),입(口業)으로

   짓는 네 가지 업, 즉 이간질(兩舌), 험악한 말(惡口), 겉만 번드레한 실속 없는 말

   (綺語), 망녕된 말(妄語),뜻(意業)으로 짓는 세 가지 욕심(貪心), 성냄(瞋心),

   어리석음(痴心)이다. 이상의 열 가지 악업(十惡業)에 반대되는 십선업(十善業)이다.

 

   즉 불살생(不放生), 불투도(不布施), 불사음(不持戒)불망어(不妄語) 불양설(不兩舌)

   불악구(不惡口) 불기어(不綺語),무탐(無貪)무진에(無瞋에),정견(正見)이 그것이다

   이 십업(十業)가운데 어느 하나도 인간의 사회생활과 무관한 것은 없다.

 

   작은 구멍 하나 때문에 거대한 댐이 무너지듯이, 사회라는 큰 틀도 개인의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특히 문명의 이기와 개인주의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개인의

   가치관과 삶은 중요한 의미를 가즌다. 개인의 변화는 시대정신을 이끄는 출발점이자

   완성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불자 개개인들이 지켜야 할 생활 규범의 원칙으로 제시하신 것이 바로

   이 열 가지다. 이 열 가지 원칙들은 몸(身)과 입(口)과 생각(意)에서 비롯된 것으로

   몸과 관련된 세 가지,입과 관련된 것은 네 가지,생각과 관련된 것이 세 가지다

 

   첫째, 몸과 관련된 규칙으로는, 산 목숨을 죽이지 말고 살려줄 것(放生)남의 것을

   훔치지 말고 베풀 것(布施) 다른 사람과 삿된 관계를 갖지 말고 정숙한 생활을 할

   것(?行)을 강조 하셨다

 

   둘째, 말과 관련된 규칙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상대방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경우가

   있다. 언어생활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남에게 정직한 말을 해야 한다

   (眞寶語)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조그마한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이나 숨길 것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스스로 당당한

   사람이 되어 거짓말에 쏟는 노력을 긍정적인 분야로 돌려 정직하게 살아가야한다.

   그리고 부드러운 말로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안온한 상태에서 서로흉금을 터놓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愛語)

 

   남을 속이는 것은 나를 속이는 일이다. 이런 행동이 계속되면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남을 속이게 된다. 인간의 자의식은 언제난 잠재하고 있으므로 남을 속이다 보면

   나중에는 누가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닌지 남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깊어지면

   좋지 않은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바른 말 신뢰를 쌓아야 하면,

   이상한 말로 남을 현혹시키지 말아야 한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남이 잘 되는 것을

   못 봐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마음 상태가 지속될 경우 믿음

   보다는 불신이 깊어져 사회가 혼란스러워진다. 이간질은 비윤리적임을 알아서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으로 이끄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和合語)

 

   셋째, 생각과 관련된 규칙들이다. 우리들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계율,선정, 지혜의 삼학(三學)을 닦아 나아가는 것뿐이다.

   잘못된 행동의 뒷면에는 탐욕이 자리잡고있다. 따라서 탐욕을 버리는 정신 수양이

   필요하다. 부처님께서는 늘 무욕의 경지를 설하셨다(無 )재가불자들은 탐욕을 억제하고

   지족하는 삶을 살아나야 한다.

 

   한편, 남을 배려하지 않고 화를 낼 경우 인간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돌이길 수없는

   분열과 대립으로 몰고 간다. 따라서 자신의 조급한 마음과 남을 배려하지 않고 화내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며, 그것은 수행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성냄이 없는

   경지를 무진애(無瞋에)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