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부. 교화의 나날들
제9장 녹야원 설법 /
야사의 출가 /
카샤파 삼형제를 찾아서 /
상두산 설법 /
빔비사라왕, 사리불과 목건련의 교화 /
여인 비샤카의 보시행 /
죽은 아들을 살리고자 /
앙굴리마라를 제도하여 /
고향을 찾아서 /
야쇼다라와의 만남 /
석가족의 출가 /
바이샬리의 기근 /
암라팔리와 망고나무 동산 /
계를 파한 제자 슈디나 /
데바닷타의 음모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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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부. 교화의 나날들
제9장
[녹야원 설법]
교진여 등 다섯 동료들에게 법을 설하시고자 결정하신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머물고 있는 갠지스강 지류, 바루나 강가에 있는 녹야원으로 길을 향하셨습니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며칠을 걸어 녹야원에 이르렀을 때 다섯 수행자들은 여전히 이전과 다름없는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으며, 멀리서 다가오는 부처님을 보고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습니다.
"저기 타락한 사문이 걸어오고 있다. 사문의 본분인 고행을 등지고서, 이제 몸은 살찌고 신수가 훤히 빛나고 있구나. 우리, 그가 다가오더라도 인사도 하지 말기로 하자."
그러나 정작 부처님께서 그들 앞에 다가서자 그들은 부처님의 모습에 압도되었고, 제각기 땅에 엎드린 채 부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고타마여, 먼 길을 오시느라 힘드셨겠습니다."
"사문들이여, 여래(如來)를 보고서 그 이름을 불러서는 안된다. 나는 이미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어 붓다가 된 것이다. 너희 사문들도 나의 가르침을 듣고서 열심히 수행한다면 그대들 출가의 목적을 이룰 수 있으리라."
이렇게 하여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들에 대한 부처님의 최초 설법은 시작되었습니다.
"출가수행자에게는 버려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그 하나는 육체의 요구대로 자신을 내맡겨버리는 쾌락의 길이고, 또 하나는 육체를 지나치게 학대하는 고행의 길이다. 여래는 이러한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택하였으며, 그 중도의 이치를 깨달음으로서 참다운 해탈에 이르게 되었느니라.
그렇다면 그 중도란 무엇이겠는가? 모든 것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알게 하는 것으로서,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八正道]을 가리킨다.
곧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며[正思],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르게 살며[正命], 바르게 정진하고[正精進], 바른 것을 생각함[正念]으로 해서 참다운 선정[正定]에 들게됨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처님 설법을 들은 그들의 마음은 활짝 열렸고, 모두가 더없는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어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각각 생 노 병 사(生老病死)의 네가지 고통[四苦] 및 사랑하는 것과 헤어져야 하는[愛別離], 미워하는 것과 만나게 되는[怨憎會], 구하고자 하나 얻지 못하는[求不得], 그리고 다섯 가지의 집착이 쌓이게 되는[五取蘊] 등의 8가지 고통[八苦]에 대해 말씀하셨으며,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4가지 성스런 진리[四聖諦]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존재의 구성원리인 오온(五蘊)의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이치를 통한 제행무상(諸行無常) 및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 등 삼법인(三法印)에 대한 내용을 설해 마치셨으며, 그렇게 하여 다섯 명의 사문들은 모두가 온갖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즉 아라한과를 증득한 채 해탈을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기쁨에 넘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여섯 명의 아라한이 있다."
여기서 여섯 명이라 한 것은 부처님 자신까지를 포함하여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곳 녹야원 설법에서는 불교 교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생겨나게 되는데, 불교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는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가 이와 더불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부처님 자신은 불(佛)에 해당되며,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 중도(中道)의 교리 및 네가지 고통[四苦] 여덟가지 고통[八苦] 등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인식으로부터, 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원리로서 사성제(四聖諦)와 사성제의 실천원리인 팔정도(八正道), 그리고 오온(五蘊)에 대한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인식을 통한 제행무상과 제법무아 열반적정 등 삼법인(三法印)의 가르침은 모두가 불교의 핵심 법(法)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법을 깨달음으로서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된 다섯 사문과 함께 부처님까지를 포함한 승(僧:승단)이 형성되어, 이름하여 불교의 신앙 대상으로서 삼보(三寶)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사의 출가]
이후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들과 함께 한동안 녹야원에 머물고 계셨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부처님께서 비구들과 함께 바루나강 강변을 산책하고 계실 때, 건너편 강기슭에는 괴로움에 지쳐 마구 고함을 질러대며 날뛰고 있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외쳐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괴롭다!"
이렇듯 외치고 있는 그는 녹야원 근처 바라나시에 살고 있는 장자의 아들 야사라는 청년이었습니다. 그 연유인 즉, 전날 저녁 그의 집에서는 커다란 연회가 베풀어졌습니다. 늦은 밤까지의 연회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때, 뭔가 상서롭지 못한 꿈을 꾸게 된 야사는 이리저리 후원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는 참으로 보지 않아야 될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한 여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서로를 희롱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야사는 마음에 크나큰 충격을 입었고, 그리하여 집을 나와 연신 '괴롭다'는 말만을 내뱉고 있었던 것입니다.
청년 야사가 다가오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대 청년이여, 내 그대에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 주리라."
오랜동안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있던 야사의 마음 속에는 차차 어둠의 그림자가 벗겨져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처님의 모든 설법이 마쳐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였습니다.
"저도 부처님 제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여 부처님의 여섯 번째 제자가 된 야사도 깨달음을 얻게 되었으며, 이후 아들을 찾아 부처님을 방문한 그의 아버지 역시 삼귀의(三歸依)로서 신앙고백을 한 최초의 재가신도가 되었습니다.
야사의 출가는 바라나시에 살고 있는 많은 상류층 자제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집안의 아들이 출가함에는 분명 뭔가 까닭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야사의 친구 54명은 뒤를 이어 모두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일체 고(苦)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난 채 해탈을 증득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쳐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60명의 제자 모두가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불러모아 아주 중대한 선언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이미 정법(正法)을 듣고 해탈을 얻어 고뇌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생들은 아직도 세간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러므로 떠나거라, 비구들이여! 모든 중생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그러나 같은 길을 두 사람이서 가지는 말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흩어져 여러 곳을 돌면서, 제도해야 할 사람을 제도할 지어다. 세간에는 더럽혀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타락해갈 것이지만, 가르침을 들으면 깨달아 아라한이 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카샤파 삼형제를 찾아서]
이렇게 각각의 제자들을 떠나보내신 부처님께서는 홀로 보드가야 옆 니련선하 강가에 살고 있는 카샤파 삼형제를 찾아 먼길을 나섰습니다. 그들 삼형제는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拜火敎)의 우두머리들로서,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1,00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들이 머무는 세에나마을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카샤파형제들을 찾아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카샤파여, 지금 나는 마가다국 왕사성으로 가고 있는 길인데, 이제 날이 어두워 이곳에서 하룻밤 묵어 갔으면 합니다. 어디 빈 전각이라도 내어 줄 수 있겠습니까?"
그 전각에는 그들 배화교도들이 섬기고 있는 커다란, 신통력을 가진 뱀이 한 마리 살고 있었습니다. 카샤파는 혹 부처님께서 그 뱀에게 해라도 입지 않을까 염려하였지만, 부처님께서는 개의치 않고 그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자 하였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을 불쾌히 여긴 뱀은 온몸에 무서운 독과 불길로써 부처님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드시어 온몸에 빛과 열기를 발하시며 생각하셨습니다.
'뱀을 다치게 하지는 않은 채, 불로써 불을 다스리리라.'
아침이 되자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버린 부처님께서는 전각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 발우 속에는 신통력을 잃은 뱀이 한 마리 담겨 있었습니다.
"카샤파여, 이것을 당신의 뱀입니다. 그 뱀이 일으킨 불은 나의 불에 의해 쉬 꺼지고 말았습니다."
카샤파는 부처님의 크나큰 신통력에 놀라움을 표현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수행력만을 믿은 채 부처님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무려 3500가지의 기적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카샤파여, 그대는 진정 아라한이 아니오. 아직 아라한으로서의 길을 걷지 못하고 있으며, 그대의 가르침은 성자의 도가 또한 아닌 것이오. 부디 삿된 길에서 벗어나 정법에 귀의하기를 바라오."
이렇게 말하는 부처님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카샤파 형제들은 그분께 숨겨져 있는 무한한 정신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카샤파 삼형제는 크나큰 마음의 감동을 안은 채 그들 천명의 제자들과 더불어 부처님께 귀의,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상두산 설법]
부처님께서는 새로 귀의한 천명의 비구들과 더불어 마가다국 왕사성으로 향한 채 또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상두산(象頭山)을 넘어서고 있었을 때, 그들 앞 저멀리 왕사성의 한 산봉우리에서 맹렬한 불길이 솟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불길을 한동안 바라보시던 부처님께서는 새로이 개종한 천명의 비구들을 불러 모으시고 다음과 같이 설법하셨습니다.
"온갖 망상이 부싯돌을 쳐 어리석음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타고 있다. 눈이 타고 있다. 눈에 비치는 형상이 타고 있다. 그 형상을 인식하는 생각도 타고 있다. 눈으로 보아 생기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모두 타고 있다.
그것은 무엇으로 인해 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 노여움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인해 타고 있다.
또한 태어남과 늙음, 병듦과 죽음의 번뇌로 인해 모든 것은 타고 있다.
탐욕과 노여움 어리석음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는 것은 나를 근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탐 진 치의 세 가지 불을 멸하려면 나의 근본을 끊어야 한다. 그러면 세 가지 불길은 모두 꺼지고 삼계(三界)를 윤회케 하는 모든 괴로움은 스스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로 보는 자는 모든 것에 대한 애착이 없어지리라. 애착이 없어지면 그때 비로소 해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리라…"
높은 산, 솟아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부처님 설법을 듣고 있던 제자들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실 여태껏 불을 숭배하고 섬겨왔던 그들에게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부처님의 한마디 가르침은 평범한 곳에 숨겨진 진리의 참모습을 열어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이같은 설법을 들은, 이전에 불을 섬겨왔던 천명의 제자들은 크나큰 깨달음에 이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빔비사라왕, 사리불과 목건련의 교화]
카샤파 삼형제가 부처님 제자가 되었다는 소식은 곧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께서 머물고 계신 상두산에 사신을 보내 왕사성에 방문해주실 것을 청하였고, 그 전갈을 받은 부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이끌고 왕사성의 가까운 숲 장림(杖林)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일행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빔비사라왕은 곧 신하들과 함께 부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숲으로 향하였습니다. 숲에 이르렀습니다. 환히 빛나고 있는 부처님 얼굴을 바라보자 빔비사라왕은 곧 부처님 발밑에 엎드려 크나큰 존경의 예를 올렸으며, 많은 신하들 또한 왕을 따라 마음으로부터의 예를 올렸습니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이시여, 나와 내것이라는 생각을 여의십시오. 법에는 원래 '나'가 없는 것이니, 범부는 이것을 나라고 보아 미혹함을 일으켜 끝없는 고통에 얽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란 없다'는 이치를 통달할 것이며 전도된 생각을 멀리할 것이니, 이것은 해탈의 근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나'라는 생각을 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도, 즐거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나를 잊어버린 채 백성을 생각하고 나를 잊어버린 채 중생을 생각할 것이며, 그리하여 나도 중생도 잊어버림 속에서 마음에 걸림없는 것을 얻게 된다면 나의 마음은 온 우주에 확대되어질 것이고, 그때 비로소 열반에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 본래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곳에는 생사도 없습니다. 태어남도 태어남의 이전도, 죽음도 죽음 이후도 없는 그러한 세계가 펼쳐 보일 것입니다."
부처님 설법을 듣고난 왕은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리는 듯한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하였습니다.
"내가 아직 태자였을 때, 나에게는 다섯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 첫째는 내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으며, 둘째는 나의 영토에 부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이었고, 셋째는 내가 그 부처님을 섬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으며, 넷째는 부처님께서 나에게 설법하여 주실 것, 그리고 다섯째로는 내가 부처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으면 하는 것 등이었습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이 나라에 오셨고, 부처님 설법을 들은 나는 그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 설법은 넘어진 자를 일으켜주듯, 감추인 것을 드러내주듯, 길 잃은 자에게 길을 밝혀 보이듯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나의 소원은 모두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나는 부처님께 귀의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이렇게 하여 부처님께 귀의하게 된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을 위하여 죽림원에 커다란 정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은 쏟아져내리는 폭우와 내려쬐는 햇볕을 피할 만한 거처를 갖지 못하였으므로, 때로는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불교교단 최초의 죽림정사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정사(精舍)를 중심으로 부처님 교단은 날로 번성해가게 되었습니다.
포교하러 나섰던 제자들도 차츰 돌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정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들 모두는 부처님 설법을 듣고 재가신도가 되거나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한편 당시 인도의 6대 사상가 중 하나였던 산자야 벨라띠뿟따의 제자 사리불과 목건련도 자신을 따르는 250명의 무리를 이끌고 부처님께 귀의하였으며, 훗날 부처님 법을 이어받게 될 마하 가섭 역시 부처님께 귀의하여 교단 구성원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왕사성 거리마다에는 부처님을 비난하는 소리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가다국 왕사성에 한 사문이 나타났다. 그는 우리의 아들과 남편마저 그의 제자로 빼앗아가더니, 산자야의 제자들마저 빼앗아갔다. 이제 그는 어떤 사람들을 유혹해갈 것인가?"
이러한 평판에 부처님께서는 오직 조용히 말씀하실 뿐이었습니다.
"이같은 비난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여래는 법에 의해 사람을 인도할 뿐이다. 바른 법에 귀의하는 것을 시기하는 자는 누구인가? 바른 법을 시기하는 자는 모두가 바르지 못한 자일 것이다."
이렇듯 왕사성 죽림정사에 머물며 법을 설하던 부처님께서는 성도(成道) 후 약 4년 경에 사위국을 방문하시게 됩니다. 사위국의 장자 수닷타가 기원정사를 짓고 부처님을 초청하였던 바, 부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그곳을 방문하여 오랜 동안 기원정사에 머물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인 비샤카의 보시행]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머물러 계실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곳 사위국에는 비샤카라 불리우는 부유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을 집으로 청해 공양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비샤카의 집에 이르렀던 그날은 몹시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공양이 모두 끝난 후 비샤카는 부처님께 다가가 다음과 같이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저에게는 여덟 가지 바라는 바가 있사옵니다. 부디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비샤카여, 여래는 그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 전에는 그것을 허락할 수가 없소."
이 말을 들은 비샤카는 자신이 마음속으로 원하는 바 그 여덟가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첫째는 비가 올 때 스님들께서 입을 비옷을 보시(布施)하였으면 하는 것입니다. 또한 둘째는 처음으로 사위성을 찾은 스님들께서 이곳 저곳을 찾아다님이 없이 제집에서 공양을 드셨으면 하는 것이고, 셋째는 먼길을 떠나실 스님들께서 탁발시간에 쫓겨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지 않게끔 공양을 드렸으면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몸이 불편하신 스님들과, 그리고 그 병든 스님을 간호하는 스님들은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면 안되므로 제집에서 공양을 드셨으면 하는 것이고, 여섯째는 앓는 스님들께 약을 드렸으면 하는 것입니다. 또 일곱 번째는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영양식을, 그리고 여덟 번째는 스님들께서 목욕할 때 입을 옷을 보시하였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물으셨습니다.
"비샤카여, 그 모든 소원들이 자신을 위하여 어떤 이익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제가 어떤 사람인가를 도울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저의 마음을 기쁘게 해줄 것입니다. 그 기쁨으로 인하여 저는 마음속의 온갖 죄악을 저버릴 수 있을 것이고, 그리하여 마음의 안정 속에 능히 도에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비샤카여, 그대가 바라는 바는 옳은 것이오. 이에 나는 여덟 가지 보시를 즐거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대 보시의 마음은 존귀하고, 그리하여 능히 슬픔을 이겨 행복을 낳을 것입니다. 아까운 생각 없이 기쁨으로 하게 되는 자비의 보시행은 그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고, 그럼으로써 보시를 받은 자도 동시에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부처님 말씀을 듣게 된 비샤카는 진정 마음으로부터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죽은 아들을 살리고자]
또한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물러 계셨을 때, 사위국에 살던 크리샤 고타미라는 한 여인이 죽은 아들의 시체를 품에 안고 부처님을 찾아와 이렇듯 간청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부처님, 저는 지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서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혹 제 아들을 되살려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그녀의 애처로운 표정을 바라보던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여인이여, 하나의 방법이 있다. 지금 즉시 그대가 여지껏 아무도 죽은 이가 없는 집에서 한웅큼의 겨자씨를 가져올 수 있다면, 나는 그대 아들의 목숨을 살려 주겠노라."
부처님 말씀을 듣게 된 여인 고타미는 순간 크나큰 희망과 기쁨 속에서 마을로 뛰어갔습니다. 고타미는 서둘러 겨자씨를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방문한 어느 집에서나 겨자씨는 많이 있었지만, 그 어떤 곳에서건 여지껏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은 집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또다시 고타미는 여러 곳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렇듯 여러 집을 찾아 헤매이는 동안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집마다에 죽음이 지나쳐가지 않은 집은 없으며, 모든 인간은 결국 죽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날 밤, 풀이 죽은 채 늦게서야 돌아온 고타미에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어디에 있는가?"
여인은 격한 감정 속에서 흐느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오늘 인생의 크나큰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태어난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죽었던 아들을 되살리고자 했던 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인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마음의 평온을 얻은 채 부처님 가르침을 마음으로부터 받아 듣고자 합니다."
고타미의 말을 듣고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빠르건 늦건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이러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면 인간은 누구나가 행복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여인이여, 당신은 오늘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소. 죽음과 함께 삶은 언제나 당신을 따르며 당신을 책려할 것입니다."
이렇듯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 여인은 크나큰 미혹에서 깨어나 무상의 이치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앙굴리마라를 제도하여]
한편 그곳 사위성에는 바라문의 제자로서 앙굴리마라라 불리우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체력이 강하고 지혜가 뛰어났으며 용모 또한 훤출한 앙굴리마라는 스승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스승이 왕궁에 초대를 받아 집을 비웠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스승의 부인이 앙굴리마라를 찾아와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는 체격이 뛰어난 대장부요, 나이를 따져봐도 나와 비슷하니, 우리 서로 좋아하면 어떻겠는가?"
이 말을 들은 앙굴리마라는
"부인께서는 어머니와 같고 스승은 아버지와 같은 것인데,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여 그녀의 청을 거절하였습니다.
부인은 부끄러운 생각과 동시에 창피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으며, 스스로 분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남편이 돌아오자 앙굴리마라가 자기에서 수작을 걸어 욕을 당하였노라고 거짓 고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바라문은 이내 앙굴리마라를 파멸시킬 방법을 생각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앙굴리마라여, 그대는 나에게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노라. 이제 오직 하나의 비술만을 체득하면 되는데, 그것은 오후가 되기 전에 100명의 사람을 죽이고서 그 100개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게 되면 되는 것이니라."
평소 스승을 존경했던 앙굴리마라는 스승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크나큰 격분 속에서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뛰쳐나가 보이는대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부처님께서는 앙굴리마라를 제도하시고자 그가 날뛰고 있는 곳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 1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99명의 사람을 죽이고 난 앙굴리마라는 이제 마지막 한명을 찾고자 초조해하고 있었으며, 앙굴리마라의 어머니가 아들을 찾아 길을 나섰던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자기 어머니를 바라보는 순간, 앙굴리마라는 크나큰 망설임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라도 죽여서 자신의 도를 성취하고자 생각한 앙굴리마라는 칼을 들어 어머니에게로 달려들게 됩니다. 그러한 미치광이의 모습을 바라본 부처님께서는 그 사이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거기 섯거라!"
이제 앙굴리마라는 부처님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달음질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부처님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앙굴리마라는 말하였습니다.
"사문이여, 제발 걸음을 멈추시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그대 앙굴리마라여, 나는 멈추어 있는데 네가 멈추질 못하고 있구나. 세존은 언제나 스스로 머물러 일체가 그에게서 은혜를 입건만, 그대는 스스로 살생의 마음을 내어 악행조차도 멈추지 못하고 있노라."
부처님 말씀을 듣게 된 앙굴리마라는 이내 마음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무릎꿇고 부처님께 예배하며 말하였습니다.
"원하옵건데 세존이시여, 저의 이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부디 저를 당신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이렇게 하여 부처님 제자가 된 앙굴리마라는 오래지 않아 크나큰 깨달음에 이르를 수 있었습니다. 이전의 자신 어리석음을 뉘우친 채 참된 지혜의 극한에까지 다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향을 찾아서]
싯달타태자가 위 없는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님이 되었다는 소문은 멀리 카필라국에 이르기까지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정반왕은 하루빨리 자랑스러운 자기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고, 그리하여 여러명의 사신들을 보내 부처님께 그 뜻을 전달코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찾아갔던 사신들은 그를 만나 설법을 듣고는 모두 그의 제자가 되었으며, 사신으로서 자신들의 임무는 망각한 채 오직 수행에 전념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번에는 자신이 제일 총애하는 신하이자 어렸을 적부터 태자의 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우다아인에게 명하여 자신의 심정을 부처님께 전하도록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부처님을 찾아 뵙고 그의 설법을 들은 우다아인 역시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다아인만은 정반왕이 부탁했던 일들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으며, 기회를 보아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말을 전하였습니다.
"부처님, 지금 고향 카필라국에서는 정반왕과 모든 석가족들이 부처님을 만나뵐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곧 카필라성에 가셔서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펴심이 어떻겠습니까?"
"우다아인이여, 사실 나도 오래 전부터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이제 그때가 되었나 보구나. 어서 모든 비구들에게 일러 카필라성으로 떠날 준비를 하도록 해라."
그 말을 듣고서 기쁨에 찬 우다아인은 소식을 전하고자 부처님 일행보다 한걸음 앞서 카필라성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부처님께서 카필라성을 방문하시기로 했던 날, 그날은 대단한 축제일이었습니다. 정반왕과 더불어 대신들 및 모든 석가족들은 부처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하여 온 거리를 아름답게 장식하였고, 많은 비구들의 행렬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카필라국에 도착한 부처님과 그의 일행은 성 밖에 있는 니그로다 숲속에 머물면서, 카필라성 안의 집집을 돌아다니며 출가사문의 관습에 따른 걸식을 시작하였습니다.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이 거리에서 걸식하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던 정반왕의 마음속에는 반가움보다는 실망과 불쾌함이 찾아들게 되었습니다.
"아들아, 나는 너와 네 동료들을 위해 충분한 음식과 거처를 제공할 수 있는데도 너는 어찌하여 걸식하며 왕궁에는 찾아오지 않았느냐?"
"저는 이미 이전의 태자가 아닙니다. 오직 출가수행자의 법도에 따라 걸식을 행할 따름입니다. 과거의 연등불과 교진여불, 그리고 가섭불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님께서도 걸식을 하셨으며, 걸식으로써 생명을 보존하였습니다."
이렇듯 부처님 대답을 듣게 된 정반왕은 마음 속에 크나큰 공허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만에 아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기쁨을 갖게도 되었지만, 아들의 얼굴에서 풍겨지는 범할 수 없는 위엄을 느낀 채 정반왕의 가슴에는 쓸쓸함이 찾아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하튼 정반왕은 자신의 아들, 부처님 발우를 받아든 채 그들 일행을 인도하여 왕궁을 향해 길을 나아갔습니다.
[야쇼다라와의 만남]
부처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문이 전해지자 왕궁 안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부처님을 만나뵐 수 있다는 사실에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되었던 사람은 태자비 야쇼다라였습니다.
어린 라훌라의 자라는 모습만을 지켜보며 순간순간의 기쁨을 느낀 채 살아왔던 야쇼다라. 그러나 그녀도 오늘만큼은 솟아오르는 격정에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옴에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윽고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이 공양을 마치자 왕궁 안의 모든 사람들은 부처님께 다가가 예배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야쇼다라만은 그 앞에 나아가지 않은 채 홀로 생각하였습니다.
'만일 나에게 조금이라도 덕이 갖춰져 있다면 부처님께서 손수 나를 찾아주실 것이다. 나는 그때 예배를 드리리라.'
그러한 생각을 알아채신 부처님께서는 사리불과 목건련을 데리고서 야쇼다라가 있는 곳으로 나아가셨습니다. 부처님과 야쇼다라와의 상면에는 차마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깔려지게 되었습니다.
오랜 연민의 정이 어우러진 속에 무거운 침묵만이 계속되어질 뿐, 야쇼다라가 부처님 발밑에 엎드려 예배를 올리게 된 것은 순간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음의 격정도 다소간 가라앉게 되자, 정반왕은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아들아, 야쇼다라는 네가 노란옷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노란옷을 몸에 걸쳤으며, 하루에 한끼만을 먹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루에 한끼만을 먹었고, 또한 편안한 침대를 멀리한 채 몸에 온갖 장신구를 떼어버렸으며, 주위에서 재혼할 것을 요청해도 그것을 거절한 채 오직 아내로서의 덕행을 지켜나가기에 힘썼느니라."
이 이야기를 들은 부처님께서는 자신과 야쇼다라와에 얽힌 전생담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오랜 생에 걸쳐 아내로서의 덕행을 쌓아왔던 야쇼다라의 공덕을 찬양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 욕정을 갖지 않았던 행적을 들춰 보이며 야쇼다라의 마음을 위로코자 하였습니다.
이윽고 저녁해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끌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니그로다숲을 향해 다시금 발걸음을 돌리셨습니다.
[석가족의 출가]
이튿날 양모 마하 프라쟈파티의 아들이자 부처님의 이복형제인 난타의 결혼식과, 그를 태자로 임명하는 예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난타의 신부는 당시의 미인으로 알려진 순다리였습니다.
이윽고 모든 예식이 끝마치자 부처님께서는 그를 마중하러 나온 난타에게 갑자기 자신의 발우(鉢盂)를 건네준 채, 아무 말없이 니그로다숲속으로 발길을 향하였습니다. 난타는 도중에 몇차례나 부처님께 발우를 돌려드리고자 하였지만 끝내 돌려드리지 못한 채 결국은 부처님을 좇아 니그로다숲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숲에 이르른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난타야, 너는 곧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라. 지금 정작 너의 마음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있구나. 그러나 내 말대로 곧 출가함이 좋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부처님께서는 손수 난타의 머리를 깎으셨으며, 그에게 천상의 아름다운 천녀를 보여줌으로 해서 신부 순다리에 대한 애절한 생각을 잊게 하셨습니다.
난타의 출가로 말미암아 순다리의 마음 속에는 크나큰 슬픔이 찾아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슬픔은 순다리 뿐만이 아닌 정반왕에게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정반왕은 난타에게 왕위를 물려준 채 나머지 여생을 즐기고자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하는 수 없이 정반왕은 라훌라를 태자로 임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태자로 임명된 라훌라에게 야쇼다라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라훌라야, 너의 아버지께서는 본래 많은 재물을 갖고 계셨지만, 집을 떠난 후로는 전혀 그 재산을 찾아볼 수가 없구나. 너는 곧 아버지에게로 가서 그의 재산을 상속받아야 한다. 그러니 이제 곧 왕이 될 것을 말씀드리고, 아버지의 많은 재물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청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계획들을 미리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의 물질적 재산이란 끊임없는 괴로움을 수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나는 보리도량에서 얻은 귀중한 정신적 보물을 주어 세간을 뛰어넘는 재산을 물려받게 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명하시어 라훌라를 출가시키도록 하셨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12세. 삼귀의를 외우므로서 라훌라는 승단 최초의 사미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라훌라의 출가에 뒤이어 석가족의 많은 젊은이들이 출가하여 부처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사촌형제인 7명의 왕자들도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 사문이 되었으며 이발사 우바리 또한 그들에 앞서 출가하여 이후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불리워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석가족의 많은 사람들이 출가하게 되자 양모 마하 프라쟈파티와 야쇼다라는 그들도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했고, 얼마가 지나 정반왕이 죽음에 이르게 되자 그들은 석가족의 여인 500명을 이끌고 바이샬리까지 부처님을 찾아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바이샬리의 기근]
부처님께서 오랜 동안 기원정사에 머무신 후, 또다시 마가다국 죽림정사에 돌아와 계셨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마가다국의 인접국가로서 바이샬리라는 자그마한 나라가 있었는데, 어느 해엔가 그 나라에는 혹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고, 굶어죽는 사람들 조차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질병 또한 유행하여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들 곤경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나라에서는 별의별 수단을 강구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바라문교의 전통적 방법에 따라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고, 당시 유행하던 자이나교 등 육사외도의 지도자들을 불러 재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재난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마침내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부처님께서 머물고 계신 마가다국 죽림정사에 사신을 보내어 부처님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죽림정사에서 바이샬리까지 가는데는 상당히 오랜 기간이 소요되어 닷새 동안 평지를 걸어, 앞에 놓인 갠지스강을 건너야 하기도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갠지스강을 건너고 있을 때, 강 건너편에서는 바이샬리 사람들이 부처님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강을 건너 그들 영토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하늘에서는 크나큰 벽력이 울렸고, 큰비가 쏟아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랜 가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바이샬리에 도착하신 부처님께서는 {보경(寶經)}이라 불리우는 경전을 거리에 유포시키도록 아난다에게 명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난다는 밤을 세워가며 경전을 외웠고,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발우에 물을 담은 채 물을 뿌리면서 거리를 거니셨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일주일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재앙을 일으킨 악귀들은 하나씩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마지막에 이르자 그곳 도시에서는 모든 재앙이 그쳐졌고, 이후 사람들은 모두가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암라팔리와 망고나무동산]
또한 언젠가 부처님께서 바이샬리 성밖의 수풀동산에 머물러 계셨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곳 바이샬리에는 암라팔리라 불리우는 아주 이름있는 창녀가 살고 있었는데, 마침 부처님께서 동산에 머물러 계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암라팔리는 시종 500인의 창녀들을 이끌고 부처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대는 무엇하러 이곳에 찾아왔는가?"
"저는 오래전부터 부처님의 드높은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훌륭한 법문을 듣고 밤이나 낮이나 그것을 마음속에 새겨둔 채 언제나 삿된 길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생각코자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암라팔리여, 행실이 단정치 못한 자에게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느니라. 자신 이름이 손상되고 많은 사람의 미움을 받게 되며, 두려움과 의심을 품는 일이 많아지고 죽어서는 지옥에 가게 되며 나중에는 축생의 업보를 받게 되는 것이니, 그것은 모두가 욕심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것이니라.
또한 행실이 단정한 이에게는 다섯 가지 복이 있느니, 자신의 명예가 드러날 것이고, 관리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며, 몸이 편안하고 죽어서는 천상에 나고 나중에는 열반의 도에 이르게 될 것이니라."
오랜 동안의 설법이 이어졌습니다. 이어 다음날 부처님과 많은 스님들을 공양에 청한 채 암라팔리는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암라팔리의 집에서는 부처님과 함께 1250인의 비구들을 위한 공양이 마련되었습니다.
이윽고 공양이 마쳐졌을 때, 황금 물병의 물을 부어 부처님 손을 씻어드린 뒤 암라팔리는 말하였습니다.
"이곳 바이샬리의 성 밖에는 많은 동산이 있으나, 제가 가지고 있는 망고나무동산 만큼이나 훌륭한 곳은 없나이다. 그래서 저는 그 동산을 부처님과 제자들을 위하여 드리고자 하오니, 부디 받으시어 저의 원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암라팔리의 청을 받아들이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암라팔리여, 탑을 쌓고 절을 지으며 시원한 동산을 만들어 거니는 사람들의 안식처를 마련할 지니라. 또한 다리를 놓고 배를 만들어 사람들을 건너게 할 것이며, 들 가운데는 물을 파고 초목을 심고 많은 집을 지어 길가는 나그네들에게 제공할 지어다.
베푸는 자에게는 원망이 생겨나지 않고 두려움 또한 일지 않으며, 그의 이름은 높이 칭송되고 그의 몸은 편안할 것이니라."
또한 부처님께서는 암라팔리에게 사성제의 진리를 설하시기도 하였습니다. 부처님 설법을 듣게 된 암라팔리는 이내 마음이 맑아지게 되었습니다. 마치 흰빛의 옷감에 쉬 물이 드는 것처럼, 그의 마음은 법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암라팔리는 그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상태에 다다를 수 있었으며, 이내 오계를 수지한 채 부처님을 믿는 우바이, 곧 여신도가 되어졌습니다.
[계를 파한 제자 슈디나]
한편 부처님께서 바이샬리의 미후가 강변에서 설법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부근에 살고 있던 한 장자의 아들 슈디나는 그곳을 지나다가 마침 부처님 설법을 듣게 되었으며, 설법을 들은 슈디나는 그 속에서 크나큰 마음의 감동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자신을 둘러싼 크나큰 속박에서 벗어난 채 번민과 집착없는 대자유의 삶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 슈디나는 이내 부모와 아내를 설득하여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슈디나가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온 지방에는 혹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탁발을 나간 비구들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돌아와 굶어 죽는 일까지 생겨나자, 슈디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살던 고향에는 온갖 음식이 풍족하니 한동안 대중들과 더불어 그곳에서 걸식하면 어떻겠는가. 또한 집에서도 어느만큼의 식량은 얻을 수 있으리라.'
물론 다시 집을 방문한다는 사실에 꺼림칙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지만, 그 이전 부처님께서도 고향집을 찾았던 것을 생각한 슈디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였습니다.
한동안 그들과 떨어져 있던 슈디나가 집으로 돌아오자 가족들 모두는 슈디나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슈디나의 아내는 오랜동안의 금욕생활을 해왔던 슈디나의 감성에 크나큰 파문을 일게 하였고, 마침내 슈디나로 하여금 음욕의 격정에 휩싸이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한동안의 격정에서 벗어난 슈디나. 마음 속에 크나큰 후회를 안고 동료들에게로 돌아온 슈디나의 얼굴에는 근심의 빛이 감돌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표정 속에서 동료들은 슈디나가 음욕의 노예가 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슈디나, 그 말이 사실인가?"
마침내 그 소문은 부처님 귀에까지 들려졌고, 부처님께서는 슈디나를 불러 물으셨습니다.
"슈디나, 그대는 어리석은 자이니라. 너의 그러한 행동은 결코 사문의 법도가 아니며, 아직 사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한 자로 하여금 불법 자체의 신뢰를 갖지 못하게 만들 것이니라."
한동안 슈디나에게 출가인의 덕성을 설명하신 부처님께서는 이어 대중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계를 지키게 되면 열 가지의 이익이 있게 되나니, 너희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계로써 거울삼아 그것을 항상 지키지 않으면 안되느니라. 이제 그 열 가지 덕성을 나열하자면, 계를 지킴으로써 승단의 화합을 가져오고 승단을 받아들이게 되며, 또한 악인을 조복하게 되고 부끄러움으로 마음이 괴로운 자를 안락하게 하며, 현세의 번민을 없애주고 미래의 번민을 없애며, 믿음이 없는 자를 믿게 하고 믿음을 가진 자를 보다 향상시키며, 법에 머물러 살게 하며 청정한 마음을 오래도록 지니게 하느니라.
그리고 만약 비구로서 음행을 범한 자는 바라이죄를 짓게 되느니라. 바라이죄를 범한 자는 대중들과 함께 머물 수 없으며, 그리하여 그를 승단에서 축출키로 하겠노라."
이 음행에 관한 죄는 부처님 교단 가운데 제일 먼저 정해진 계율이 되었으며, 이를 파한 슈디나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진 채 결국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그는 재가신자로서 남아질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데바닷타의 음모들]
아난다 및 우파리 등과 함께 출가하여 부처님 교단에서 수행하던 데바닷타는 남달리 크나큰 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는 일찍이 수라다라 불리우는 비구로부터 5신통을 배워 얻게 되었는데, 그러한 연유로 그의 명성은 곧 사방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가다국 빔비사라왕의 아들 아쟈타샤트루태자의 신뢰를 한몸에 받게 됨으로서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날로 늘어나게 되었으며, 아쟈타샤트루태자로부터 많은 보시와 공양을 받게 된 데바닷타는 아쟈타샤트루태자에게 '빔비사라왕을 내치고 정권을 잡을 것과, 자신 역시 부처님 대신 교단의 지도자가 되어 새로운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가 힘써 나라를 다스리자'는 제안을 행했던 바 있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소문을 듣게 된 부처님께서는 데바닷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파초는 열매를 맺음으로서 죽게 되고, 갈대와 대나무 또한 그러하니라. 두꺼비 역시 새끼를 배면 죽게 되나니, 이(利)를 탐하는 자는 그와도 같이 스스로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니라."
여하튼 이렇게 많은 무리를 형성하게 된 데바닷타는 부처님을 찾아와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제 나이도 많고 건강 또한 좋지 않으시니, 교단을 저에게 넘겨주시고 여생을 편히 지내심이 어떻습니까?"
"데바닷타여, 나는 아직 아무에게도 나의 교단을 맡기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노라. 혹 맡긴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마하가섭이나 사리불 목건련과 같은 제자들이 있는데, 어찌 네가 교단을 이어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이렇듯 부처님께 거절을 당하게 된 데바닷타는 남몰래 무서운 음모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아쟈타샤트루태자를 꾀어 그의 부왕 빔비사라왕을 옥에 가두고, 그리하여 왕위에 오른 아쟈타샤트루태자의 힘을 빌어 부처님을 죽여 없애고자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객을 몰래 보내어 부처님을 해치려고도 하였으며, 그것이 실패에 이르게 되자 다음에는 영취산 높은 곳에서 그 밑을 지나는 부처님을 향해 큰 바위를 굴려 떨어뜨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데바닷타는 그러한 방법으로써 부처님을 해할 수 없었습니다. 영취산 높은 곳에서 굴러 떨어진 돌은 부처님께 이르자 여러 조각으로 갈라진 채 부처님 발등에는 작은 돌조각만이 떨어졌을 뿐이었으며, 부처님을 해하고자 했던 자객마저도 부처님의 위신력에 압도된 채 그의 제자가 되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자 데바닷타는 또다른 음모를 계획하게 됩니다. 곧 검은 코끼리로 하여금 술에 취하게 만들어 부처님을 밟아 죽게 하고자 생각했으며, 그리하여 성안의 모든 백성들에게는 그날 일체 거리에 나다니지 말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부처님께서 성안에 걸식하기 위하여 몸을 드러내셨을 때였습니다. 저 멀리에는 검은 코끼리 한 마리가 미친 듯 날뛰고 있었으며, 이내 부처님을 향하여 달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크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앞에 이르른 코끼리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으며, 코는 땅에 드리운 채 마치 절이라도 하는 듯 꿇어앉았습니다. 그러자 그 코끼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미움으로써 미움을 이길 수 없는 것. 미움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자비이니라."
그리고 이러한 자비심으로써 부처님께서는 극랄한 데바닷타의 모든 행위조차도 용서해 주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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