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말씀

[스크랩] 法의 習學 /佛性禮拜 /2018.07.30.월

香積 2018. 7. 30. 21:20

法의 習學 /佛性禮拜 /2018.07.30.월 /단나사


▊ 佛性禮拜


•• 선조공양

석가세존의 고제高弟인 목련目蓮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떠한 세계에 윤회하고 있는지 신통력으로 찾아보니, 의외로 아귀도餓鬼道에 떨어져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 석가세존께 상담하니, 7월 15일에 중승衆僧을 모아 공양하라고 가르침을 받아 가르침대로 한 결과 간신히 善處에 가실 수 있었다. 이것이 우란분절의 기원임은 주지周知하시는 바이다.


그럼 이러한 공양을 받지 않은 영靈은 어떻게 될까? 그것은 상불경보살품에 나와 있다. 상불경보살에게 돌을 던지거나 매도한 사람들은 죽어서 2백억겁 동안 “부처님도 만나지 못하고 법도 듣지 못하고 스님도 보지 못한다” 지옥에 떨어져 대고뇌大苦惱를 받았다고 되어 있다.


이 “이백억겁二百億劫에 상불치불常不値佛하고 불문법불견승不聞法不見僧하며”

라고 하는 경계가 최저의 악취인 지옥임을 잘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우리들이 이렇게 법화경을 만날 수 있고 승중僧中(승가僧伽 ; 신앙자의 집단)에 있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 것일까, 그것은 오로지 전세에서 법을 들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러한 인연을 만나지 못한 선조에게도 그러한 인연을 지어드리는 것이 공양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순수한 생각이다.


‣ 자기의 인격완성이 최고의 선조공양

우리들 같이 하찮은 사람들이 하는 공양에도 그렇게 커다란 힘이 있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 法이야말로 존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량의경․십공덕품』에도

“만일 중생이 이 경을 듣고 一轉, 一句 乃至 一偈하면 용건한 생각을 얻어 비록 자기는 제도되지 않아도 남은 제도할 수가 있다[若有衆生 得聞是經 若一轉 若一偈 乃至一句 得勇健想 雖未自度 而能度他]”라고 있다.


이것이『법화삼부경』의 고마운 부분이다.


일심으로 독송하면 반드시 저 세상의 선조에게도 도달하는 것이다. 선조영先祖靈 그것만이 아니라, 그 주위의 제정령諸精靈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자손을 가진 靈은 靈界에 있어서도 자랑스럽다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백천만겁百千萬劫에도 만나기 어려운 佛法에 의해 공양供養해 주고 있다. 훌륭한 자손을 두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때문에 자신自信을 가지고 供養하면 된다.


법당에서의 독경공양은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과 선조를 공양한다고 하는 목적과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가?


『법화경』의 작용이라 하는 것은, 영원한 과거에서의 선조의 인연, 부모의 인연 그리고 자신의 인연까지를 일괄하여 정화하자고 하는 대작업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먼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법화경』의 논리에서 말하면 항상 “이타利他”가 선행이기 때문에 선조의 인연을 정화해 드리는 것을 본의本義로 하는 것이 바르다.


경전을 독송하고 있으면 자연히 자신의 마음도 정화된다. 그것이 자신이 받는 공덕이다. 그러나 그 공덕을 선조에게 회향回向[돌린다]한다. 선조만이 아니라, 일체중생에게 回向한다. 이러한 利他의 정신이 법화경의 정신이다.


그 돌리는 것을 回向이라고 하는데, 그 회향에 의하여 선조가 기뻐하신다. 만족하신다. 편안하게 되신다. 그러면 당연 그 공덕은 회향한 당인當人에게도 돌아온다. 다시 회향되어 온다. 回向과 回向과의 교류交流이다. 그리고 당인도 先祖도 구제된다. 이것이 참공덕이다.


때문에 선조공양을 하면 병이 낫는다든가, 장사가 번성한다고 하는 이기적인 공덕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편안하게 현세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조금은 뻔뻔스러운 생각이다.


그러나 만일 그런 공덕이 나타났어도 그것은 마음이 정화되어 매일매일의 행위가 저절로 묘법妙法에 합치하게 되었기 때문에 자연히 생긴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결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난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또 하나 꼭 부가해 두고 싶은 것은, 선조가 참으로 기뻐하시는 것은, 자손인 우리들이 훌륭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훌륭한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은 이른바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출세하는 것도 아니다. 인격적으로 훌륭하게 되는 것이다.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른 생활을 하고 자신의 천분天分을 열심히 발휘하여 그것 나름대로 세상을 위하여 도움이 되고 사람들에게 친절을 다하고 남의 행복에 기여하는 행위를 거듭해 간다. 그러한 인간이 되면 그것이 최고의 선조공양이다.


때문에 우리들은 언제나 “사제․팔정도․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 최고의 선조공양”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결론이 되지 않을까?


수목樹木에 비유하여 선조先祖는 뿌리[根], 줄기[幹]는 자신, 가지나 잎[枝葉]이나 꽃은 자손들이라 한다. 선조공양이란 우리들의 근본인 선조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하고 보다 좋게 살아가는 것이다.


••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 梵名 Sadāparibūta)의 佛性禮拜

“최초의 위음왕여래가 열반에 드신 뒤 정법이 없어지고 모양만의 법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런 시대이니까 참 깨달음을 얻지도 않았는데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스님들이 대단한 세력을 갖고 있었다.


그 때 한 출가 보살이 있었다. 상불경이라고 이름한다. 득대세보살이여, 어찌하여 常不輕이라고 하는가 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이 비구는 출가자나 재가자나 하여튼 불도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만 보면 그 사람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면서

“① ②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다 보살도를 행하여 반드시 부처님이 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면서 찬탄하는 것이었다.


④이 비구는 경전을 독송하는 일도 없이 단지 출가 재가의 불도수행자를 보면 예배할 뿐이었다. 더구나 멀리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일부러 가까이 가서 예배하면서 “나는 결코 당신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전부 부처님이 되실 분이니까”라고 하면서 찬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러 중에는 마음이 탁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으면 화를 내는 자도 있었다. 더구나 “이 바보 같은 비구 너는 어디에서 와서 우리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고 하고 우리들이 반드시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엉터리 보증은 필요없다”고 하면서 긴 세월동안 매도했지만 그 보살비구는 결코 화를 내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을 보면 ‘당신은 부처님이 되실 분입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의 진의를 모르는

⑤군중은 막대기를 가지고 때리거나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보살은 달려 도망가 먼 곳에서 여전히 큰 소리로 “나는 당신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반드시 부처님이 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당신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라고 같은 말만 반복하므로 세상의 사부대중들은

③그 비구에게 常不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런 단 한 가지 행만을 일생동안 해 온 비구가 수명이 다할 즈음

⑥위음왕불이 설하신 법화경의 무한한 가르침을 마치 허공 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듯이 자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마음에 새겨버렸으므로 그 공덕으로서 앞에서 설한 안․이․비․설․신․의(意)의 6작용이 청정한 경지를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육근(六根)이 청정해졌기 때문에 그 몸의 수명이 늘어나고 다시 2백만억 나유타 동안 살면서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진리의 가르침을 설했다.


출처 : 단나사(보리살타사랑)
글쓴이 : 智月常現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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