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공(三空), 삼해탈문이라고도 한다. 즉 해탈을 얻어 가는 세 가지 방법으로 공해탈문(空解脫門)은 일체 만유가 모두 공(空)이라고 관하는 것이요, 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은 공이기 때문에 상대적 차별이 없다 고 관하는 것이고,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은 일체 만유가 공이고 무상이기 때문에 원해서 구해야 할 것 이 없다고 관하는 것이다. 여기서 해탈이란 고통으로 가득 찬 윤회로부터 단호하게 벗어나서 두 번 다시 생존의 세계에 이르지 않은 것을 말한다. 모든 욕망이 소멸하였다는 점에서는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열반(깨달음)과 같은 의미이다. 이러한 해탈은 다시 육체를 동반한 상태에서의 해탈인 ‘생신해탈(生身解脫)’과, 육체의 속박을 완전하게 벗어난 해탈인 ‘이신해탈(離身解脫)’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불교에서는 번뇌를 끊고서 마음의 속박을 없게 하여 신체를 갖춘 제자의 교육이나 사람들의 구제에 힘쓰는 이타적 해탈의 상태를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 : 나머지가 있는 불완전한 깨달음),’ 죽음과 동시에 심신과 함께 속박을 떠나서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것을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이라고 한다. 특히 부처님의 죽 음을 ‘반열반(般涅槃 : 완전한 깨달음)’이라 하여 따로 구분한다. 그리고 초기불교에서는 윤회의 근본적 인 원인인 욕망과 무지로부터 벗어난 심해탈(心解脫 : 마음에 탐욕을 없앤 것)과, 혜해탈(慧解脫 : 지혜 에 의해 무명에서 벗어난 것) 등으로 구분함으로써 지혜와 선정을 동시에 갖춘 수행자를 지향하였다. 이 러한 번뇌와 깨달음을 실체적 존재로서 파악하려는 부파불교의 해탈에 대한 해석은 대승불교에 이르러 서는 깨달음 그 자체도 공이라고 파악한다. 즉 대승불교에서는 미혹함도 깨달음도, 윤회도 해탈도 실체 가 없는데, 다만 인간의 고통은 아뢰야식에 의해서 이미지화된 환영(幻影)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생긴 다고 하여 명상의 실천에 의해서 깨닫고 나아가 다른 사람의 구제를 지향할 것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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