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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13) 본래 한 물건도 없다.

香積 2006. 6. 2. 13:52
三. (13)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육조단경』에 혜능이 깨달음의 노래(心揭)의 전구(轉句)에「본래 한 물건도 없다.」라고 하는「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또한 남악 회양이 처음 육조 혜능을 찾아갔을 때에 혜능이「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라는 질문에, 회양이 곧장「비록 한 물건이라고 말씀하셔도 옳지 않습니다.(說似一物卽不中)」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불성이나 자성 역시 본래 공(空)한 것임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조사선의 선문답이다.

이처럼 선불교에서는 각자의 불성을 깨달을 것을 강조하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슬로건으로 하고 있지만, 불성 그 자체의 실체성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불성도 역시 실체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 본래 공(空)한 것이기에 거기에 얽매이는 집착의 대상을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열반경』제27권에서도「불성은 제일의공(第一義空)은 지혜가 된다.」라고 설하고 있듯이 불성도 본래 공(空)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불성(佛性), 혹은 여래장(如來藏) 사상은 성립된 사실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A.D 1세기를 전후하여 대승불교의 흥기와 더불어 새롭게 주장된 반야의 공사상이 성립된 이후 A.D 4세기경부터 주장된 불교 사상이다. 즉, 불성이나 여래장 사상은 초기 대승불교의 반야나 공의 사상을 토대로 하여 새롭게 발전하여 주장된 대승불교의 사상이다. 사실 불성이나 여래장이라는 말이『반야경』이나『법화경』·『화엄경』등 초기의 대승경전과 용수의『중론』등에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일까?
말하자면 초기의 대승경전이나 용수의『중론(中論)』등 반야의 공(空)사상에서 아직 자각되지 못한 불성, 여래장 사상이 1~2세기 이후에 새롭게 주장되기 시작한 것은, 공사상의 이면(裡面)에 작용되고 있는 자각의 주체인 불성을 이 시대(4세기경)의 불교인들에 의해서 표면으로 드러내어 강조된 것이 불성사상인 것이다.

따라서 불성이나 여래장도 반야의 실천인「일체의 모든 존재는 공(空)한 것」이라는 일체개공(一切皆空)의 범주를 벗어나 달리 우빠니샤드에서 주장하는 아뜨만(atman)이나 영혼처럼, 영원불변의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불성은 대승불교에서 주장하는「일체의 모든 것은 공(空)한 것」혹은「일체의 모든 법(法)은 모두 실체가 없이 공(空)한 것」이라는 그 사실을 깨닫는 주체이며 각성(覺性)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