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세상 모든 일을 한번 쉬어라(上) / 혜암스님

香積 2020. 9. 19.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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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을 한번 쉬어라(上) / 혜암스님

눈으로 보아도 보는 상이 없으면 분별이 없고
귀로 듣고는 듣는 분별상 없으면 시비가 끊어진다
시비분별을 한꺼번에 모두 놓아버리면
청산은 적적한데 밤달만 밝도다
目無所見無分別
聽無聲絶是非라
分別是非都放下하면
靑山寂寂夜月明이라

종심從심 조주趙州 선사는 남전南泉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남전스님은 마침 침상에 누워 쉬는 참이었다. 젊은이를 보고는 그냥 누운 채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주는 서상원瑞像院이라는 절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이에 남전스님이 다시 물었다.
"서상원이라, 그래 상서로운 모습을 보기나 했나?"

"상서로운 모습은 못 보고 다만 누워서 졸고 있는 여래를 보았을 따름입니다."

조주의 뜻밖의 대답에 남전스님은 벌떡 일어나 앉으며 그에게 다시 물었다.
"자네에겐 스승이 있는가 없는가?"
"스승을 모시고 있습니다."
"스승이 누구냐?"
조주는 대답 대신 절을 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겨울이라 날씨가 차니 스승께선 건강을 살피십시오."

이렇게 해서 조주는 남전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남전스님으로서도 뜻밖에 비범한 제자를 만나 무척 기뻤다.

 

한번은 조주가 스승에게 물었다.

"도道가 무엇입니까?"

남전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니라."

조주가 다시 물었다.

"어떤 방법으로 거기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하겠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어떻게 도를 알 수 있겠습니까?"

"도라는 것은 알고 모르고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혼란일 뿐이다. 만일 네가 터럭만큼의 의심도 없이 도를 깨쳐 안다면, 너의 눈은 허공처럼 모든 한계와 장애물에서 벗어나 일체를 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조주는 홀연히 깨쳤다. 그리하여 정식으로 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도를 닦는 데 무엇이 붙을 수가 있겠습니까? 공부하는 사람은 터럭만큼이라도 ‘이 뭣고’밖에 다른 생각이 있으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일언지하에 도를 깨친다고, 전생에 모두 닦아 대근기로 된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돈오가 불법인 것입니다. 몇 겁을 닦고, 몇 생을 닦아야 견성한다고 알고 있다면 얼마나 불쌍하고 억울한 일이겠습니까. 마음말고는 부처가 없는데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하나를 알게 되면 다른 것도 알게 됩니다.

 

하루는 조주가 남전에게 물었다.
"유有를 깨달은 사람은 의당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러자 남전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산에서 내려가 아랫마을 한 마리 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조주의 반응이었다. 어리둥절해 하기는커녕 그는 스승에게 친절히 깨닫게 해 주어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전스님이 말을 받았다.

"어젯밤 삼경에 달이 창문으로 비치었도다."
"소를 떠나서 부처가 있는 줄 알면 견성하지 못합니다. 소가 된다고 하면 억울한 생각이 들는지 몰라도 소 따로, 부처님 따로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언제 성불하겠습니까."

여기의 평상심은 번뇌 망상의 평상심이 아니고 조작도 없고 시비도 없고 취사심도 무상하다는 단견短見과 불변한 상견常見도 없고 범부도 성인도 없는 청정무구한 평상심으로 알아야 합니다. 평상심이 도라고 하니까 번뇌망상을 내는 그 마음이 도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망상이 도라면 무엇 하러 도를 닦습니까. 중도사상에서 보면, 도면서도 도가 아니고, 도가 아니면서도 도이지만, 번뇌 망상을 평상심으로 알면 큰일납니다.

 

처음에 조주는 부엌의 화부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부엌문을 꼭꼭 닫고 연기가 자욱하도록 불을 지폈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불이야, 불, 사람살려라."
이 소리에 놀라 절이 발칵 뒤집히고 모두들 부엌문으로 몰려들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이 바른 말을 하기 전에 이 문을 열지 않겠다."
대중들이 놀라 말문이 막혔다. 이 때 남전스님이 다가와 말없이 문틈으로 열쇠를 건네 주었다. 이것이 바로 조주가 심중에 두고 있던 바른 말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곧 문을 열고 나왔다. 이러한 방편은 남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 스님이 조주의 초상화를 그렸다. 그것을 선사 받자 조주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라면 너는 나를 죽여 없앨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 내다 태워 버리게."

스님을 친견한다고 천길 만길을 가는데, 스님을 어떻게 볼 것입니까, 눈으로 보는 것은 스님이 아닌데, 눈으로 보는 것은 허수아비 사람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알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무명의 업이 너무 중해 도적놈에게 아침저녁으로 속아서 사니 불쌍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허수아비에게 집착하니 공부가 됩니까. 한 구절은 그만두고 낚싯밥 걸리듯 어느 반 구절에라도 걸리면 견성합니다. 팔만대장경을 모두 알아야 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래알 속에 시방세계의 이치가 모두 들어 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새로운 제자가 말했다.
"이렇게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렇다면 거기 내려놓게."
"아무 것도 가져 오지 않았는데 무얼 내려놓으라는 말씀입니까."
"그럼, 계속해서 들고 있게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비우는 일입니다. 선정을 닦는 사람이 세상일의 옳고 그름, 착하고 악한 것에 조금이라도 집념이 있으면 공부만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옥벌이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좀 쉬어야해요.

2538년 음 5월 30일 해인사 대적광전 상당법문

#혜암스님
07.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