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행복을 찾는 나그네 / 무여스님
♣인간은 행복을 찾는 나그네 / 무여스님
행복! 행복!
말만 들어도 설레는 말입니다.
행복한 사람, 행복한 결혼 생활, 행복한 인생 등 여러분이 일상생활 중에 쓰는 말 중에 가장 고귀하고 누구나 바라는 말이 바로 행복입니다.
사람이 돈을 벌려고 하고 결혼을 하거나,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입니다.
행복이란 인간의 최고의 이상이요, 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행복이란 '다행스럽고 복이 많다' 라는 뜻과 '신심의 욕구가 충족되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만족스러운 상태'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여러분의 행복지수는 얼마입니까?
누군가 '인간은 행복을 찾는 나그네'라 했습니다.
인간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 나그네처럼 일생을 이곳 저곳 헤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을 행복을 찾는 여우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여우처럼 행복을 찾기 위해서 교활하고 온갖 잔꾀를 부리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옛부터 행복을 찾아다녔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어떤 외국 시인은 '산 넘어 행복이 있다'고 하기에 간절히 노래하고 노래하면서 산을 넘고 또 산을 넘어도 행복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소설 '어린 왕자'와 '성채(城砦'로 유명한 불란서의 비행작가 생텍쥐페리는 행복한 찾기 위해서 공중을 날려는 꿈을 키우다가 비행사가 되어 야간에 아프리카 상공을 날다가 영원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 유럽인들이 꿈과 희망을 안고 행복을 찾아서 간 곳이 오늘의 미국(美國)입니다.
불자 여러분,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행복을 바라거든,
첫째, 일을 하라.
둘째, 사랑을 하라.
셋째, 희망을 가져라고 외쳤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일을 하고, 사랑을 하고, 희망을 가져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가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행복은 일시적이고 결국은 허망합니다.
옛부터 동양인들은 인간의 오욕(五欲)과 오복(五福)에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근본 욕망을 재물과 색욕(色欲)과 먹는 것과 명예와 잠자는 것을 들었습니다.
유가에서는 오래 살고, 부(富)하고, 건강하게 마음 편하게 살고(康寧), 도덕을 지키기를 낙으로 삼고(修好德),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考終命)을 다섯가지 복이라 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욕망을 성취하거나, 이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추는 것을 '복이 많다' '팔자가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옛 성인이나 도인들은 그런 행복도 허망하고 결국은 괴롭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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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마음과 비례합니다.
마음은 크게 비우면 큰 행복,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적게 비우면 적은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느끼려면 마음을 크게 비우고 크게 쉬어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쉰다는 것은 일체 생각을 끊어버리고, 일체 마음작용을 쉰다는 것입니다.
옛 스님은 "마음을 천 번 쉬고 만 번 쉬라"고 했습니다.
쉬고 쉬고 또 쉬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쉬면 곧 깨닫는다"고 했습니다.
임제(臨濟) 스님은 "쉬면 곧 청정법신(淸淨法身)이다" 했습니다.
옛날에 무업대달(無業大達) 스님은 학인들이 "스님, 법문 좀 해주십시오" 하면 화를 벌컥내면서 "망상 피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법문도 본분사 분상에서는 망상입니다.
이 망상이 근본자성(根本自性)을 흐리게 하고 어둡게 하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번뇌망상도 쉬고, 쉰다는 생각까지도 쉬어서 대무심경지(大無心境地)에 들어가게 되면 깨치게 됩니다.
그 자리가 부처의 경지요, 바로 청정법신입니다.
그것을 열반(涅槃)을 성취했다고 합니다.
마치 숯불이 이글이글 타듯이 온갖 번뇌망상으로 헐떡거리고 괴로워하는 마음이 숯불이 다 타고 불기가 완전히 다 꺼져서,
아주 고요하고 아무런 느낌도 없듯이 일체 번뇌망상이 쉬고, 쉰다는 생각까지도 쉬어서 아주 고요하고 무심한 경지가 열반입니다.
그것은 생(生)하는 것도 아니고, 멸(滅)하는 것도 아니며,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 생멸이 없는 도리라고 합니다.
그 깨달음의 경지에서 느끼는 법열(法悅)에서만 참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선지식들의 한결같은 말씀입니다.
그것은 기쁘다고 할 수도 있고, 즐겁다고 할 수도 있는,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오묘하고 대단한 기분에서만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어떤 스님이 깨치고 나서 사흘이나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더랍니다.
얼마나 좋기에 사흘이나 추겠습니까.
어떤 도인 스님은 어찌나 좋은지 산천을 하루 종일 무릎이 깨지고 발에서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다녔다고 하며,
어떤 종사는 늘 잔뜩 찌푸린 얼굴인데 어느 날 깨치고 나서는 항상 싱글벙글하여 모르는 사람은 '마음 닦는다고 하더니 미쳐도 제대로 미쳤네' 하고 걱정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법산 스님도 공부하다가 너무 좋아 자신을 억제하기 어려워 동해안을 질주하기도 하고, 뒷산을 올라가기도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춤추는 기분이나, 하루 종일 산천을 망아지처럼 마구 다닌 기쁨이나, 항상 싱글벙글하는 즐거움은 본인이 아니면 어떻게 알리요.
진정한 행복은 그런 법열에서만 느낄 수 있습니다.
참 행복은 수행에서만 느낄 수 있고, 수행에서 진정한 기분을 느껴보지 못하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쉬고 비울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 못한 것이 한탄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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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비울 수 없고, 근기마저 하열하니 방편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수행법입니다.
비록 각가지 수행법으로 수행하고는 있지만 옛 어른들에 비해서 순수하지 못하고 때묻어 있기 때문에 수행하기가 어렵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괴로워도 해야 하는 공부가 수행입니다.
수행은 해라 말아라 할 필요가 없는, 큰 일 중의 큰 일입니다.
옛 선사들은 이 일을 위하여 육신를 바쳤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깨달음에 도달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설사 깨닫지 못하더라도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삼매(念佛三昧)에는, 참선하는 사람은 선정(禪定)에는 꼭 들어보십시요.
염불삼매란?
안 되는 염불이라도 지극하게 성심성의껏 애쓰다가 보면, 염불에 마음이 집중되어 일체의 번뇌망상이 사라지고 마음이 아주 조용히 통일되어 안락한 상태를 말합니다.
선정이란?
화두참구가 잘 되어서 화두에 완전히 빠진 상태, 완전히 몰입이 된 상태를 말합니다.
화두가 간절하게 들려서 일체의 번뇌와 망상이 다 사라지고 나와 화두와 세계가 온통 한 덩어리가 되어서 아주 고요하고 아주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때는 참선하는 곳이 집인지 절인지도 모르고, 시작한지가 몇시간이 지났는지, 밥을 먹었는지 몇끼나 굶었는지도 모르고, 일체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깊은 경지에 들어있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도달해야 불교의 진수를 희미하게나마 확신할 수 있고, 수행이 무엇인지 입을 열 수 있으며, 진정한 법열 즉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경계는 꼭 체험하여 참 행복이 무엇인지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만 제대로 느껴보시면 아무리 말려도 수행을 안할 수 없고, 불자가 된 것이 한없이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행복 찾아 시방세계
미친 듯이 헤매다가
지친 몸 이끌고 간신히
한 칸 토굴 도착하니
빈 마당 돌담 아래
행복의 꽃이 만발하였네
#무여스님
스님법문1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