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용맹심으로 화두를 / 혜암스님

香積 2020. 9. 10. 07:43

♠용맹심으로 화두를 / 혜암스님

 

흰 구름은 강 위로 가고

맑은 물은 바위 앞으로 흘러 내려가더라.
白雲江上去只

綠水岩前來多

마음 말(번뇌망상)이 잠시도 머물지 않고 뛰어 달아남에
잡아오고(화두로)잡아와 또 잡아와서
이 같이 오래오래 날이 오래 깊어지면
잡지 않아도 스스로 와 눈앞에 있으리라
비로소 이 같은 경계에 이르게 될 때
뜻밖에 본원 자성을 깨닫게 되리라
옆 사람이 마음 있는 곳을 묻는다면
달은 하늘 복판에 이르렀고 밤은 삼경이로다

공부도 하지 않고, “어째서 화두가 이렇게 되지 않느냐”고 물으러들 옵니다. 언제 공부했습니까. 공부는 거짓이 없어요. 공부가 안 되었을 때는 반드시 본인들에게 허물이 있을 뿐입니다. 잘 것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고, 망상은 망상대로 다 피워 놓고, 부끄럼 없이 공부가 안 된다고 물으러 옵니다. 예전의 깨친 분들은 한 사람도 그렇게 않았습니다. 공부에 몰두해 하늘을 봐도 하늘이 아니고, 땅을 봐도 땅이 아니고 사람을 봐도 사람이 아니게끔 해야 합니다. 마음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음이 여러 가지인 것 같아도 마음은 하나밖에 없어요. 화두 하나만 잘 들면 분별심이 없으므로 들어도 듣지 않은 것과 같고 보아도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살아도 산 것이 없이 공행空行을 닦으라는 것이 아닙니까. 밤낮이 언제인지 모르고 공부해야 해요. 아침엔 너무 이르니 때를 맞추어 공부해야겠다고 하지 않고 밤이니 쉬어 자야겠다고 안 하고, 단 한번, 단 한철만이라도 자는 것, 먹는 것 돌보지 말고 공부해 봐요. 오래 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전라도 선운사 어느 대처 스님은 방부를 들여 ‘무자’ 화두를 들고 한철 만에 깨쳤어요. 살림하러 갔다가 저녁 늦게 입선시간에 달라들어 대중들의 미움을 받았는데, 공부하는 것을 보면 미친 사람 같아요. ‘무, 무’ 하고 소리 지르며, ‘어째서 무라 했느냐’ 하며 방바닥을 내리쳤어요. 그렇게 하더니 한철만에 깨치고 조실로 갔습니다.
오래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자라고, 첫철 나러 왔다고, “나는 못합니다” 하는데, 그런 데에 속지 말아요. 일 주일 만에 이 일을 해결해야겠다고 작정해 버려요. 이런 용맹을 가지고도 시원찮은데, ‘되는 데로 하자’ 해서야 되겠어요, 망상이지.

참선 공부하는 법을 비유해 말해 보겠습니다.
산중에 황금으로 된 소가 한 마리 있는데, 이 소를 잡아 내면 행복하게 살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첩첩산중에서 소 발자국의 흔적을 발견한 뒤 발자국을 좇아가다가 소를 만나면 잡으러 좇아가는데, 잡으러 가는 사람도 힘들지만 쫓겨 가는 소도 불리하여 은신처를 구하다가 필경에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돌아서 최후로 발악할 때, 상대편에도 위법망구爲法忘軀로 용맹정진하여 승리를 거두는 것이 견성법입니다. 곧 화두당처話頭當處가 소의 발자국인 동시에 불성 자리입니다.
황금소를 억압으로나 선업으로 잃어 버려도 결국에는 생사를 면치 못합니다. 예를 들면 송아지를 잡아야 항복 받고 자유 생활을 할 터인데, 노름이나 외도처럼 나쁜 일을 하다가 소를 잃어 버리거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살려 주다가 곧, 좋은 일을 하다가 소를 잃어 버려도 결과적으로 모두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세상일에 속아선 안 돼요. 세상일은 거짓으로 멋지게 연극하고 모든 반연을 끊어요. 착한 일도 옳은 일도 그른 일도 돌아보지 말고 오직 ‘이 뭣고’ 하라고 했습니다.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또 만나기 어렵습니다. 천하를 돌아봐도 나를 도와 줄 사람은 없습니다. 부처님도, 문수보살도, 관세음보살도 나를 도와 주지 않습니다. 내 죄는 내가 풀어야지 의지할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그러니 후회 말고 운수납자가 일도양단一刀兩斷하여 크게 깨달음으로 법칙을 삼아야 합니다.

여래의 청정법신을 비방하지 마라.
화탕지옥에 갈 것을 모르느냐.
혹시 어떤 사람이 욕하는 가운데 뜻을 알면
화탕지옥이 홀연히 연꽃 몫이 되리라.

2538년 음 4월 29일 해인사 대적광전 상당법문

 

#혜암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