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육체보다는 마음의 가치 / 월하스님
香積
2020. 9. 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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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보다는 마음의 가치 / 월하스님
육체라는 것은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로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인연이 다하면 각각 흩어진다고 하지요. 사람이 죽으면 뼈는 흙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흙으로 간다고 합니다. 또 모든 액체 소변이나 피, 고름은 물에서 왔기 때문에 물로 가고 또 체온은 자연물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로 돌아갑니다. 또 움직이는 동작은 풍에 속하는데 그것 역시 풍으로 돌아가고 네 가지가 각각 돌아가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가 허망하다고 하는 겁니다. 육체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섞여 형성되었기에 그것을 부정하게 보는 겁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육체처럼 깨끗한 것이 없고 육체처럼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몸 밖에는 아무 물건도 없다 해서 몸이 제일이라고 위하는 것만 알고 몸이 조금이라도 상할까 봐 애를 쓰고 약이란 약은 다 먹고 몸에 도움된다고 하면 무엇이든 다 먹습니다.
그러나 육체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죽게 마련입니다. 이래서 그런 것을 무상(無常)하다 합니다.
옛날 등운봉 스님은 큰 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절에 밥 짓는 공양주가 있었는데 솥에다 불을 지피다 잘못해 옷에 불이 붙어 타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는 순간 생각하기를 ‘내가 공양주를 안 했으면 타죽는 일이 없었을텐 데 공양주를 해서 타죽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공양주는 죽는 순간 등운봉 스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공양주는 염라대왕에 앞에 서게 되었답니다. 염라대왕이 공양주에게 “너는 생전에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양주는 불에 타 죽은 데 대해 기분 나쁘게 여기고 있던 터라 “등운봉 스님이 공양주를 억지로 시켜 밥을 짓다 옷에 불이 붙어 죽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고 그 스님이 심히 원망스럽습니다. 그 스님을 잡아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공양주의 말을 듣고 염라대왕은 등운봉 스님을 데리고 오라고 저승사자를 보냈습니다. 절에 가면 가람신이 있는데 가람신은 도량 전체를 살피는 일을 합니다. 가람신이 저승사자에게 어딜 가느냐고 물었답니다.
등운봉 스님을 데리러 왔다고 했더니 찾아보라고 하면서 내가 12년을 여기 있었어도 등운봉이란 스님은 본 적이 없다 하였답니다.
그래서 사자들이 찾아보니 어디에도 없어 그냥 돌아가서 염라대왕에게 보고하자 타서 죽은 공양주는 발을 구르면서 거기 가면 있는데 못 찾아 왔다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염라대왕이 그럼 공양주에게 데리고 오라고 하여 절에 가보니 스님이 마당에 있더라는 것입니다.
공양주는 스님을 붙잡고 염라대왕에게 가자고 하니, “무슨 이유로 나를 오라 하느냐?” 물으니 공양주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불만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스님은 “사람이고 짐승이고 자기의 성품과 마음자리는 본래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라고 하는 것은 불로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물로도 능히 빠뜨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당신이 죽었으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내게 와서 이러는 거 보면 죽지 않은 것 아닙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양주는 죽으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이 스님을 원망하는 것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깨닫고 나니 스님을 원망한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고 염라대왕에게 다시 갈 필요도 없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결국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만사 해결되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물론 육체가 있어야 세상살이도 할 수 있고, 또 중생의 몸으로 자녀도 키워야 하고 사업도 해야 하고 자기 몸도 가꿔야 하고 좋은 것도 사서 발라야겠고 좋은 옷도 입어야겠지요. 이것이 중생의 본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니고 육체에 아무리 치중해 봐야 성불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이치를 몰라 자꾸 거기에 치중하고 그 야단치다 인연이 다해 죽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죽는 마당에 육체에 치중해 봐야 허망하고 허사라는 걸 깊이 깨닫고 나면 알뜰히 먹고 입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히 그런 생각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굶지 않을 정도로 먹으면 그만이고 적당히 입으면 그만이지 좋은 것 갖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그래서 저절로 생활이 가벼워지고 그런 생각이 나기 전에는 부족감이 느껴지지만 그런 것은 사람을 용렬하게 만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불교 믿는 분들은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 출처 : 붓다월드 : http://www.buddhaworld.org/
#월하스님
육체보다는 마음의 가치 / 월하스님
육체라는 것은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로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인연이 다하면 각각 흩어진다고 하지요. 사람이 죽으면 뼈는 흙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흙으로 간다고 합니다. 또 모든 액체 소변이나 피, 고름은 물에서 왔기 때문에 물로 가고 또 체온은 자연물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로 돌아갑니다. 또 움직이는 동작은 풍에 속하는데 그것 역시 풍으로 돌아가고 네 가지가 각각 돌아가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가 허망하다고 하는 겁니다. 육체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섞여 형성되었기에 그것을 부정하게 보는 겁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육체처럼 깨끗한 것이 없고 육체처럼 더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몸 밖에는 아무 물건도 없다 해서 몸이 제일이라고 위하는 것만 알고 몸이 조금이라도 상할까 봐 애를 쓰고 약이란 약은 다 먹고 몸에 도움된다고 하면 무엇이든 다 먹습니다.
그러나 육체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죽게 마련입니다. 이래서 그런 것을 무상(無常)하다 합니다.
옛날 등운봉 스님은 큰 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절에 밥 짓는 공양주가 있었는데 솥에다 불을 지피다 잘못해 옷에 불이 붙어 타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는 순간 생각하기를 ‘내가 공양주를 안 했으면 타죽는 일이 없었을텐 데 공양주를 해서 타죽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공양주는 죽는 순간 등운봉 스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공양주는 염라대왕에 앞에 서게 되었답니다. 염라대왕이 공양주에게 “너는 생전에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양주는 불에 타 죽은 데 대해 기분 나쁘게 여기고 있던 터라 “등운봉 스님이 공양주를 억지로 시켜 밥을 짓다 옷에 불이 붙어 죽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고 그 스님이 심히 원망스럽습니다. 그 스님을 잡아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공양주의 말을 듣고 염라대왕은 등운봉 스님을 데리고 오라고 저승사자를 보냈습니다. 절에 가면 가람신이 있는데 가람신은 도량 전체를 살피는 일을 합니다. 가람신이 저승사자에게 어딜 가느냐고 물었답니다.
등운봉 스님을 데리러 왔다고 했더니 찾아보라고 하면서 내가 12년을 여기 있었어도 등운봉이란 스님은 본 적이 없다 하였답니다.
그래서 사자들이 찾아보니 어디에도 없어 그냥 돌아가서 염라대왕에게 보고하자 타서 죽은 공양주는 발을 구르면서 거기 가면 있는데 못 찾아 왔다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염라대왕이 그럼 공양주에게 데리고 오라고 하여 절에 가보니 스님이 마당에 있더라는 것입니다.
공양주는 스님을 붙잡고 염라대왕에게 가자고 하니, “무슨 이유로 나를 오라 하느냐?” 물으니 공양주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불만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스님은 “사람이고 짐승이고 자기의 성품과 마음자리는 본래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라고 하는 것은 불로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물로도 능히 빠뜨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당신이 죽었으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내게 와서 이러는 거 보면 죽지 않은 것 아닙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양주는 죽으면 아무 것도 없을 텐데 이 스님을 원망하는 것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깨닫고 나니 스님을 원망한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고 염라대왕에게 다시 갈 필요도 없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결국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만사 해결되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물론 육체가 있어야 세상살이도 할 수 있고, 또 중생의 몸으로 자녀도 키워야 하고 사업도 해야 하고 자기 몸도 가꿔야 하고 좋은 것도 사서 발라야겠고 좋은 옷도 입어야겠지요. 이것이 중생의 본 모습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니고 육체에 아무리 치중해 봐야 성불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이치를 몰라 자꾸 거기에 치중하고 그 야단치다 인연이 다해 죽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다 소용없는 것입니다. 죽는 마당에 육체에 치중해 봐야 허망하고 허사라는 걸 깊이 깨닫고 나면 알뜰히 먹고 입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연히 그런 생각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저 굶지 않을 정도로 먹으면 그만이고 적당히 입으면 그만이지 좋은 것 갖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그래서 저절로 생활이 가벼워지고 그런 생각이 나기 전에는 부족감이 느껴지지만 그런 것은 사람을 용렬하게 만들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불교 믿는 분들은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 출처 : 붓다월드 : http://www.buddhaworld.org/
#월하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