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생애 [4], 제4부. 열반의 땅을 향하여
IV부. 열반의 땅을 향하여
제10장 죽방촌에서 안거를 /
열반을 예고하시다 /
슬픔에 빠진 아난다 /
춘다의 공양 /
수바드라의 출가와 부처님의 열반 /
장례식과 사리탑의 출현 /
맺음말
**************************************************************************************
IV부. 열반의 땅을 향하여
제10장
[죽방촌에서 안거를]
부처님 생애의 말년에 이르러, 바이샬리에 한동안 머물러 계시던 부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그곳 근교의 벨루바 마을이란 곳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방에는 심한 기근이 일고 있었으며, 그래서 많은 제자들과 함께 탁발하기 곤란함을 느낀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온 세상은 기근으로 인하여 모두가 굶주리고 있다. 때문에 우리도 이곳에 함께 모여 살 수 없으니, 너희들은 몇 명씩 짝을 지어 주변의 월지국이나 바이샬리 지방으로 흩어져 여름 안거를 보낼 수 있도록 하여라.
좋은 일을 만나도 기뻐하지 말고, 나쁜 일을 만나더라도 슬픔에 빠지지 말지니라. 또한 그대 비구들이여, 우리가 먹는 음식이란 그저 육신을 유지키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욕망이란 무상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며, 무상한 욕망을 이기지 못해 생사의 미로에서 번뇌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니라."
이렇듯 제자들을 떠나보내신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와 더불어 그곳 벨루바 마을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자 결정하셨습니다.
혹심한 더위, 그 여름 안거 중에 부처님께서는 심한 병에 걸리시게 되었습니다. 죽을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 부처님께서는 생각하셨습니다.
'시자 아난다에게 알리지도 않고 제자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 이대로 열반에 든다는 것은 참으로 좋지 않은 일이다. 이 고통을 견디어 좀더 살아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때 그곳에서 멀찌기 떨어진 곳, 나무 밑에서 참선을 하고 있던 아난다는 부처님을 찾아와 부처님 안색이 좋지 않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아직 살아계시는 동안 저희 제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아난다여, 비구들이 더 이상 내게 무엇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지금껏 나는 많은 법을 설해왔지만 그것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였으며, 나에게는 언제나 특별한 비밀이 있지도 않았노라. 또한 나는 제자들을 통솔했던 적도 그들이 나를 의지했던 일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나를 따르도록 해야겠다고 특별히 생각한 일 또한 있지 않았노라. 그러므로 죽는다고 해서 특별히 해야 할 말이 없다. 그저 비구들은 항상 나에게서 들어왔던 정진만을 행하면 충분할 것이니라.
아난다여, 나는 이제 늙어 80이 가까웠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것과도 같이 내 몸도 겨우 움직이고 있노라. 그러나 이 육체의 고통을 참아내는 것도 잠시뿐, 마음의 심상이 없이 오직 적정의 삼매에 들어선 속에서만이 진정 마음의 평온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의 법에 귀의해야 할 것이며,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법을 등불삼고 의지처로 하여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만이 진정 수행인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후 내가 죽은 후에라도 그렇듯 자신의 법에 의지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참으로 나의 제자라 말할 수 있느니라."
[열반을 예고하시다]
얼마쯤 병이 나으신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와 더불어 차파라사당에로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한동안 머물러 계시던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야, 등이 몹시 아프구나. 이곳에 자리를 깔도록 하여라. 여기서 잠깐 쉬어야겠다."
아난다는 곧 자리를 깔아드렸고, 이어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여래와 같이 모든 신통력을 갖춘 사람은 만일 원하기만 한다면 1겁이 넘도록 세상에 머물며 중생들을 이익케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이렇듯 세 번이나 연거푸 말씀하시는 부처님의 의도를 아난다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곧 언제까지나 이곳 세상에 머물러 계시면서 뭇 중생들을 이롭게 해 주시기를 아난다는 부처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채 아난다는 그곳 주변에 있는 큰 나무 밑으로 가서 앉았으며,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의 뜻에 대해 생각코자 하였습니다.
이윽고 아난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마왕 파순이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마음에 아무런 욕심이 없으십니다. 그러니 지금 곧 열반에 드심이 어떻습니까. 지금이 바로 열반에 드실 때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마왕 파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라. 내 스스로 그 때를 알고 있느니, 지금으로부터 3개월 후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밑에서 여래는 열반에 들 것이니라."
3개월 후에 열반에 드시겠다는 부처님 말씀에 마왕 파순은 즐거움에 날뛰며, 홀연히 사라져갔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땅이 크게 진동하였습니다.
[슬픔에 빠진 아난다]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에 깜짝놀란 아난다는 부처님께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까닭을 묻는 아난다에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생애에 있어 중요한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 지축을 뒤흔드는 크나큰 지진이 따르게 되느니라. 즉 최초로 호명보살이 도솔천에서 마야부인의 모태에 들었을 때 지진이 일어났고, 또한 모태에서부터 태어나던 날, 그리고 성도하여 부처가 되었을 때, 또한 처음으로 진리의 법륜을 굴렸을 때에도 지진이 일어났으며, 여래께서 스스로의 생명을 그치기 원하였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래가 입멸할 때는 언제나 크나큰 지진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부처님께서는 조금전에 있었던 마왕 파순과의 대화 내용을 아난다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3개월 후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거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아난다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좀더 오랫동안 세상에 머무를 수는 없으십니까?"
조금 전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의 의미를 뒤늦게서야 깨닫게 된 아난다는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저 묵묵히 앉아계실 뿐이었습니다.
이제 여름 안거가 끝나고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머물고 계신 차파라사당 부근으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비구들이 한곳에 모이게 되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한 것. 게으르지 말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내가 이처럼 간곡히 말하는 것은, 머지 않아 내가 열반에 들 것이기 때문이니라. 여래는 앞으로 석달이 지나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들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부처님께서는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 인간과 만물에게 생이 있으면 반드시 종말이 있는 법.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우리 인간의 육체란 무상한 것. 자신의 뜻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이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희 비구들은 알아야 할 것이니라.
또한 너희 비구들은 바른 법에 의지해서 살고, 법과 조화를 이룬 채 다툼이 없이 동일한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게 된 무리이다. 그러므로 나의 법에 의지해서 살아가며, 너희들은 힘써 그 법을 익혀나가야 할 것이니라."
[춘다의 공양]
설법을 마치신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끌고 열반의 땅 쿠시나가라로 향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비마세나 카팔라 언덕에 이르른 부처님께서는 마치 코끼리가 뒤를 돌아보는 것과 같이, 천천히 몸을 돌려 바이샬리 땅을 바라보시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내가 이 성을 마지막 보는 것이다. 이 몸으로는 다시 이 성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 말을 마치시자 구름 한조각 없는 하늘에서 갑자기 한바탕 소나기가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곳을 떠난 부처님께서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간다촌과 암바라촌, 염부촌과 부가성과 쿠시나가라에 이르는 열반의 노정을 재촉하셨습니다.
도중에 그들 일행은 파바 마을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일행은 춘다라 이름하는 대장장이의 공양을 받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 전단향나무에 핀 버섯으로서 요리를 만들어 대접한 춘다는 물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세상에는 몇 종류의 사문이 있습니까?"
"도를 잘 행하여 근심과 두려움의 바다를 건너고 높이 하늘과 인간의 도를 초월해 열반에 이르는 자가 그 첫째요, 가장 중요한 뜻을 알고서 또한 그 뜻을 남들에게 설하여 더럽힘이 없고, 자비심으로써 모든 의심을 밝게 비추어 주는 자가 그 둘째이며, 끝없는 경지를 바란 채 일체의 다른 것을 돌보지 않고 힘써 게으르지 않으며 법을 받아 스스로 수행하는 자가 그 셋째요, 밖으로는 깨끗하되 안으로는 탁하여 성실함이 없고 더러운 곳을 향하는 자가 그 넷째이니라.
춘다여! 한 사람의 허물을 들어 여러 사람을 책망해서는 안될 것이다. 형상만이 좋은 것은 좋은 것이 아니요, 마음이 깨끗하고 맑은 자라야만 좋은 것이라 말할 수 있느니라."
춘다의 집을 나선 부처님께서는 더욱 심한 병고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부처님 모습을 바라본 아난다는 말하였습니다.
"세존께서 공양을 드신 후 이렇듯 괴로워하시니, 춘다의 공양은 결코 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도다. 여래가 성도할 때 맨처음 공양한 자와 열반할 때 맨 마지막으로 공양한 자의 공덕은 그것이 다를 수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춘다는 무한한 과보의 공덕을 받을 것이며, 수명과 힘을 그리고 명예와 많은 재보를 얻고 죽어서는 천상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와 더불어 또다시 길을 나아갔습니다. 많은 무리의 행렬 가운데 춘다 역시 울면서 뒤를 좇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묵묵히 길을 나아가시던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등이 몹시 아프구나. 어서 이곳에 자리를 깔아다오."
부처님께서 자리를 정하신 곳 저편에는 한줄기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난다가 떠다드린 물로써 머리와 얼굴을 씻으신 부처님께서는 물으셨습니다.
"우리의 목마름은 물로써 씻어낼 수가 있는 것.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갈증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한동안 부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서 쉬고 계셨습니다. 그때 쿠시나가라에서 파바 마을로 향해 걸어오고 있던 외도의 제자 복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쉬고 계시던 부처님을 발견한 그는 그 뛰어난 용모에 감복한 채, 자신이 가지고 있던 두 개의 황금빛 가사를 부처님께 입혀 드렸습니다.
순간, 부처님 몸에서는 섬광과도 같은 광채가 솟아올랐습니다. 부처님 몸에서 피어나는 광채로 인하여 황금빛 가사조차 제 빛을 잃을 것 같았습니다.
"아난다여, 여래의 피부빛깔에 유난히 빛이 생기는 일은 평생에 두 번 일어나는 것이다. 그 하나는 여래가 무상의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되어진 때와, 그 수명이 다하여 열반에 이르게 되는 밤이 그것이니라. 오늘 저녁 여래는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들게 될 것이니라."
[수바드라의 출가와 부처님의 열반]
오랜 여행의 종착지. 히란야바티 강을 건너 부처님 일행은 쿠시나가라의 사라나무 숲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숲을 가로질렀습니다. 두 그루의 커다란 사라나무가 눈에 띄었고, 그곳에 이르른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이곳 사라쌍수 사이에 자리를 마련토록 하여라. 그리고 나의 머리는 북쪽에 두고 얼굴은 서쪽을 향할 수 있도록 하여라. 나의 가르침은 북쪽에서 크게 떨쳐질 것이기 때문이니라."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양 발은 포개어 마치 사자왕의 형상을 지으신 채, 부처님께서는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자리에 누우시자 양옆에 심겨진 사라나무는 일제히 꽃을 피웠고, 그 피워진 꽃잎은 부처님 위에 내리덮혔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은은한 향내음이 진동하였고, 천녀들의 노래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들, 하늘과 나무의 신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라쌍수와 하늘의 모든 천녀들이여, 꽃과 향으로써 올리는 너희들의 공양은 참다운 공양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능히 법을 받아 그 법을 행하는 자만이 참으로 여래를 공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저녁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한밤중 부처님께서 입멸하실 거라는 소문을 전해들은 수바드라라 불리우는 늙은 수행자 한사람이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세존이시여, 세간의 모든 사문들과 바라문들, 그리고 육사외도들은 모두가 자신들만이 일체지를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여 다른 종파를 서로가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그 옳고 그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떠한 자가 진실한 사문이며, 어떤 행을 행해야만이 진정 해탈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수바드라여, 모든 법 가운데 팔정도를 행하지 않는 자는 선업을 닦고 악업을 멸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곧 바르고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하며[正思],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하고[正業], 바르게 살며[正命], 바르게 정진하며[正精進], 바른 것을 생각함[正念]으로 해서 참다운 선정[正定]에 들게 되는 팔정도(八正道)를 행하지 않고서는 중도(中道) 또한 이룰 수 없는 것이고, 그를 통한 해탈이 없는 곳에 일체지란 생겨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바드라여, 오직 나의 법에만 팔정도가 있습니다. 내가 설했던 바 법은 능히 해탈의 길이며, 그러므로 여래는 능히 일체지(一體智)의 근원이 되는 것이오. 그대 현명한 수바드라여, 그대는 능히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 수바드라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땅에 엎드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출가한 수바드라는 부처님 생전의 마지막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쿠시나가라의 밤은 깊었습니다. 은은한 달빛이 사멸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질서잡혀진 삼라만상도 이 순간만은 숨을 멈춘 채 시간 조차 그 걸음을 멈추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랜 침묵. 그 침묵 가운데 한마디 흐느낌이 일었고, 그 흐느낌 속에서 아난다는 말하였습니다.
"세존께서 세상에 계실 때 우리는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세존께서 열반에 드시면 우리는 가르침을 원해도 받을 곳이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때가 되면 아난다여, 너희는 모두 네 가지 것을 생각할지어다. 곧 여래가 태어난 곳을 생각할 것이며 또한 여래가 성도한 곳, 그리고 여래가 법을 설하던 곳과 열반에 든 곳을 생각할지어다. 너희들이 이 네곳을 생각하므로 해서 여래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며, 그의 가르침을 상기하여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게 될 것이니라.
또한 아난다여, 여래가 열반에 든 것을 보고 정법이 끊겼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나는 너희 비구들을 위하여 계율을 정하고 법을 설파하였다. 이제 그것이 너희 비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내가 열반에 든 다음에도 청정한 계율을 존중하기를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난 자가 빛을 귀하게 여기고, 가난한 자가 보물을 얻은 것처럼 하여라. 청정한 계율은 너희들 스승이기 때문이며, 내가 살아 있음과 같은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보는 것이요, 법을 보는 자는 곧 나를 보는 자라 말할 수 있으리라."
달빛 가득한 곳. 사라나무 동산의 침묵 속에서 부처님 설법은 사람들 마음 깊숙한 곳까지 울려퍼지게 되었습니다. 이어 모든 비구들을 불러모으신 부처님께서는 어느 무엇이건 의심나는 점들에 대해 묻도록 하셨으며, 아무 물음도 없게 되자 이내 다음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모든 현상은 변천한다. 게으름없이 정진할지어다."
실로 이것은 부처님께서 남기신 최후의 말씀이었다고 경전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 최후의 한마디를 남기신 채 부처님께서는 영원한 적정의 세계로 들어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무명속에 뒤덮힌 이 언덕[此岸]을 넘어, 생사의 바다를 건넌 열반의 저 언덕[彼岸]에 이르신 부처님.
그날은 유난히도 달이 밝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사라나무 동산 곳곳에 아름다운 향기가 피어났으며, 지축을 뒤흔드는 크나큰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게 된 것입니다.
[장례식과 사리탑의 출현]
이른 새벽, 많은 비구들의 슬픔을 밤새껏 위로해왔던 아니룻다는 이제 쿠시나가라에 살고 있는 말라족 사람들에게 부처님 입멸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아난다를 마을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그들 부족의 슬픔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윽고 어느 정도 슬픔이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아난다는 평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전륜성왕과 같은 장례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화장을 하기 위해 향나무를 쌓아올린 관에 여러 차례 불을 붙여보았으나 어쩐 일인지 관은 타오르지 않았습니다.
기이하게 생각한 말라족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천안통을 가진 아니룻다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지금 부처님의 수제자 마하가섭이 500명 비구들을 이끌고 부처님을 뵙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때문에, 마하가섭이 부처님을 뵈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늘의 신들이 관을 불붙지 않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일주일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났고, 포교를 위해 길을 떠났던 마하가섭과 500명의 비구들이 그곳에 이르를 수 있었습니다.
마하가섭이 예배하기 위해 부처님 관 앞에 나아가자 부처님의 두 발은 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예배가 끝마쳐짐과 함께 부처님 발은 다시 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처님께 대한 예배를 마친 마하가섭은 곧이어 부처님 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을 읊게 됩니다. 그러자 이윽고 향나무 더미에서는 스스로 불이 일어났으며, 이렇게 하여 부처님의 장례예식은 거행되었습니다.
모든 장례예식이 마쳐졌습니다. 그 사이 인도의 전역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이 널리 퍼져나갔고, 이어 주변에 있는 일곱 나라의 왕들은 각각 부처님 사리를 얻어 큰 탑을 세우고자 쿠시나가라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나라에 부처님 사리를 모시게 된다는 것을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리를 다투어 얻고자 전쟁마저 일어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바라문 드로나의 중재로 인해 쿠시나가라를 포함한 8개국이 부처님 사리를 공평하게 나눠갖게 되었으며, 그러자 모두들 만족한 채 각국의 왕들은 신하들과 군대를 이끌고 각기 자기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하나하나 부처님 사리탑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즉 쿠시나가라의 말라족에 의해, 그리고 마가다국 아쟈타샤트루에 의해, 바이샬리의 릿챠비족에 의해, 카필라바스투의 샤카족에 의해, 알라캇파의 부리족에 의해, 라마그라마의 콜리야족에 의해, 파바의 말라족에 의해, 베타두비파의 바라문에 의해 각각 8개국에는 부처님 사리를 안치한 거대한 탑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곳에 늦게 도착한 핍팔리바나의 모랴족 사람들은 타다 남은 재로써, 그리고 사리를 분배한 바라문 드로나는 그 분배했던 병을 가지고 탑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부처님 사리로써 8개의 탑이, 그리고 병을 안치한 아홉 번째의 탑이, 또한 타다 남은 재를 안치한 열 번째 탑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부처님 수염과 머리털을 안치한 탑이 나란다에 세워지기도 하여, 모두 11개의 탑이 인도 전역에 걸쳐 세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가셨습니다. 이렇듯 소멸되어질 육체를 떨쳐버린 채, 영원한 자유의 몸을 얻으신 부처님. 그의 삶의 표상은 사리로서 남겨진 채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참 법신은 영구불변한 진리가 되어 오늘날 우리의 마음 속에 현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저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는 슬픔에 잠겨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처님께서 남기신 다음의 교훈을 충분히 알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현상계의 모든 것은 덧없는 것.
이것이 나고 죽어감의 이치이니라.
나고 죽는 이치마저 없게 되면은
그곳에 고요한 참 즐거움 있게 되느니."
<맺음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세 달이 지나 제자들은 처음으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하가섭이 교단의 지도자로 추대되었으며, 이후 그들은 마하가섭의 지시에 따라 부처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곧 500명의 비구들이 왕사성의 칠엽굴 동굴 속에서 모임을 가졌고, 여기서 아난다는 경(經)을, 우바리는 율(律)을 각각 암송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머지 499명의 만장일치로 합송(sa g ti)된 경문(經文)은 구전되어진 채, 이후 아쇼카왕대에 이르러 활엽수 패다라(貝多羅, pattra) 나뭇잎에 기록, 문자화되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전의 시초가 되는 것으로 패엽경(貝葉經)이라 불리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각각의 패엽경은 광주리(pitaka)에 담아 보관되었으며, 경(經) 뿐만이 아닌 율(律)과 론(論)을 기록한 각각의 패엽경은 세 개의 광주리(tri-pitaka)에 담겨진 채 후세에 전해져, 이를 삼장(三藏)이라 이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지 2500여년이 지난 오늘날, 그럼에도 그 경 율 론 삼장의 진리는 우리의 가슴 속에 투영된 채 아직도 살아계시는 부처님 숨결을 느낄 수 있게끔 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부처님의 진실된 모습은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중생들의 마음 속에 한없는 감동으로 남겨진 채, 우리를 인도해 줄 것입니다. 끝없는 진리의 바다로, 영구한 해탈의 문에로, 적정(寂靜) 그 자체인 열반의 세계로 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궁극의 열반에 들어설 수 있을 때 부처님 가르침은 우리 가슴 안에 진정 남겨질 것이며, 모든 중생들은 끝없는 완성의 정점에 이르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