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건축물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불전(법당)이다. 법당은 흔히 금당으로도 불리는데, 황금빛의 불상을 모신 곳이기 때문이다. 불전은 축대, 층계, 주춧돌, 기둥, 마루, 창호, 처마, 천장, 지붕 등 모든 부분의 조성에 각별한 공을 들여 부처님이 살고 계시는 최상의 전당으로 세워지게 된다. 따라서 사찰 내에서 가장 공을 들여 짓는 건물이 바로 법당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법당의 사방으로 부속건물을 질서 있고 조화롭게 배치함으로써 법당의 품격을 더욱 높이게 된다.
또한 대규모의 불전을 세우거나 불전의 장엄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2층, 3층 또는 5층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의 불전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화엄사의 각황전은 2층 건물로 세워졌으며 금산사 미륵전은 3층, 법주사 팔상전은 5층 건물로 세워졌다. 이러한 다층건물의 불전은 단층건물의 불전보다 규모가 크고 설계도 아주 복잡하다. 그뿐만 아니라 기술상으로 현대건축보다 훨씬 어려운 고도의 건축기법에 의하여 완성된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예전에는 현대와 같은 발달된 건축장비와 자재 운반기술이 없었으므로 모든 건축공정이 수공과 지혜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기초공사
불천의 건축공정에서는 우선 불전과 부속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터를 잡아 터닦기를 한 마음 터가 무너지지 않도록 축대 쌓기를 하게 된다. 이때 축대는 막돌 쌓기, 바른돌 쌓기, 허튼층 쌓기, 바른층 쌓기 등의 축조법응로 석축이 이루어지는데 축조법의 선택에 따라 석축의 구성미가 다양하게 드러나게 된다. 석축 쌓기와 터다지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건물을 짓게 되는데 고전적인 방식에서는 질서정연한 석조시간을 조성하고 그 위에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후로는 석조기단을 석축기단으로 대체하거나 기단을 생략하고 바로 낮은 토단 위에 기초공사를 하고 주춧돌을 놓기도 하였다. 주춧돌도 고려시대까지는 방향 또는 원형의 주춧돌을 사용하였는데 특히 조선시대 후기 이후로는 ‘덤벙주초’라고 하는 자연석 주출돌을 대강 다듬어 쓰는 방식이 유행하였다.
기둥과 지붕
기둥은 대체로 둥근 기둥을 썼으며 통일신라신대 이후에는 기둥의 중간부가 두툼해지는 이른바 배흘림기둥이 선보이기도 하였다. 현재 통일신리시대의 기둥이 남아 있는 건물은 없으나 당시의 승탑에서 배흘림기둥이 뚜렷이 나타나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 배흘림기둥은 기둥이 탄탄해 보이는 시각적 효과가 있다. 기둥을 세운 다음에는 기둥과 기둥을 위쪽 부분에서 꿰뚫고 연결하는 창방이 결구되고 각 기둥 위에는 커다란 주두가 놓이며 그 위로 지붕을 떠받는 부재들이 놓이게 된다.
지붕은 여러 부재들이 대규모로 결합된 구성물이므로 상당한 중량과 부피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붕을 구성하는 각 부재들은 역학적으로 치밀하게 짜맞추어져 지붕의 모양을 이루게 되고 동시에 육중한 지붕의 무게가 공평하고 안전하게 기둥으로 전달되도록 되어 있다.
공포의 구조
주두 위에서 지붕을 최초로 안전하게 떠받치는 부재들의 뭉치를 공포라고 하는데, 여러 개의 첨차와 소로로 구성된다. 첨차는 처마 밑에서 지붕의 무게를 받아내는 여러 겹의 받침부채이며, 소로는 이 받침부채들 사이에서 서로의 틈을 괴어주는 작고 납작하며 네모난 부재들이다. 고려시대까지는 이 공포들이 주로 기둥 위에만 설치되는 주심포식 건물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등은 대표적인 주심포식 건물이다. 그 후 고려시대 말기에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에도 공포가 설치되는 다포식 건물이 등장하여 조선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다포식 건물의 공포 구조는 기둥 위의 주심포는 물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간포가 설치되므로 기둥 끝을 관통하는 창방 위로 공포를 줄지어 얹어 놓을 평방이 설치된다. 즉 주심포식 건물과 다포식 건물은 공포의 숫자는 물론 평방의 유무로 쉽게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대들보, 도리, 서까래
공포의 구조를 이루는 첨차는 지붕 대부분의 무게를 지탱하는 대들도와 도리를 받게 되고 대들보는 지붕 전체를 가로로 받치게 된다. 도리는 여러 군데에서 서까래를 가로로 받쳐주는 긴 부재이다. 그 중 지붕 내부의 맨 위쪽 한가운데를 받는 것을 종도리, 중간 부분을 받는 것을 중도리, 기둥 안쪽을 받치는 것을 내목도리, 기둥 위에서 서까래를 받는 것을 주심도리, 기둥 바깥 쪽에서 받는 것을 외목도리라고 한다. 그런데 주심포식 건물에서는 내목도리가 없고 다포식 건물에는 내목도리가 있다.
서까래는 지붕꼴을 이루는 뼈대로서 통나무를 세로로 벌여 구성되며, 통상 지붕 위에서 처마 끝까지는 두 개의 통나무가 엇걸기로 연결되어 한 골의 서까래를 이루게 된다. 또한 처만 끝을 길게 내어 햇볕이나 빗물을 차단하고 아울러 처마의 맵시를 더하기 위해서는 한 토막씩의 빗물을 차단하고 덧대는 덧서까래가 설치되기도 한다. 처마의 네귀에서는 서까래가 부챗살처럼 퍼지면서 살짝 위로 들려 지붕모양이 곡선미를 나타내면서 더욱 우아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기와
서까래 위에는 진흙과 짚을 버무려 덮고 기와를 얹어 지붕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이때 덮이는 대부분의 기와는 두 종류이다. 그 중 지붕 바닥에 놓여 기왓골을 이루는 넓적기와를 ‘암키와’라 하고, 암키와와 암키와의 사이를 덮는 길쭉기와를 ‘수키와’라 한다. 그리고 지붕의 가장 자리인 처마 끝을 마감하는 기와를 ‘막새기와’라 하는데 여기에도 ‘암막새’와 ‘수막새’기와가 사용된다. 특히 막새기와에는 연꽃무늬, 당초무늬 등 여러 가지 장식무늬가 새겨지며 여기에 새겨진 무늬에 의하여 기와의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다.
바닥과 창호
건물 내부의 바닥에는 전돌 또는 마루를 깔게 된다. 대체로 전돌은 북방건축, 마루는 남방건축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내부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원래 중앙에 설치되고 좌우에는 살창만 있었는데 조선시대 이후로는 건물 앞면에 온통 창호를 달아 건물 내부가 밝아졌다.
또한 창호는 띠살, 빗살, 꽃살 등으로 장식하고 이 창문들은 좌우로 접히고 위로 들려 건물 내부가 훤히 개방되도록 문달기 방식이 발식이 발전하기도 하였다. 한편 앞쪽 전체에 창호문이 달리게 되면서 이곳의 가운데 칸은 부처님을 위한 상징적인 출입통로가 되고 신도들은 좌우 벽체의 앞쪽에 개설된 출입문을 이용하게 되었다.
문은 뒷벽에도 설치된다. 뒷벽 중앙에는 출입문이 설치되고 양 옆면에는 창호를 내는데 예로부터 건물에는 사방에 사문팔창을 내던 조영법식을 따른 것으로 보이며 시대가 흐를수록 뒷벽의 창과 문의 사용 예는 줄어들어 오늘날에는 그 자취만 남아 있다.
불단, 불전, 단청
불전 내부의 중간부에는 약간 뒤쪽으로 불단이 설치된다.
불단 위에는 불상을 안치하고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를 걸게 된다. 이때 불단에 안치된 주존불상의 명호에 따라 불전의 명칭이 정해진다. 즉 석가모니불이 주존이면 대웅전, 대웅보전 등으로 불리어지고, 주존불이 비로자나불이면 대적광전, 대광명전, 보광전, 적광전 등으로 정해진다. 비로자나불이 ‘무한광명의 청정여래’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불전의 명칭에 ‘광’자가 쓰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존이 아미타불일 경우는 극락전, 아미타전, 관세음보살일 경우는 관음점, 원통전 등으로 불리고 미륵불일 경우는 미륵전, 천불일 경우는 천불전 등으로 불리게 된다. 이 밖에도 팔상전, 지장전, 시왕전, 명부전, 칠성각, 산신각 등도 건물 내부에 모셔진 주인공에 따라 명칭이 정해진다. 마지막으로 불전 내외부의 벽체와 천정에는 화려한 단청과 벽화 장식이 베풀어짐으로써 건물이 완공된다.
부속건물
사찰의 건물은 불전이 주건물이 되며 때로는 한 사찰에서도 불전이 여러 곳에 세워지기도 하여 불전 중에서도 주불전이 따로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주불전과 불전의 부속건물로는 창건주의 영정이나 초상을 모신 조사당, 교리를 강학하는 강당, 절 안마당으로 들어서는 곳에 세워져 강당으로 쓰이기도 하고 때로는 법고, 목어, 운판 등을 걸어 두기고 하는 문루, 범종을 걸어 두는 종루, 각종 불경을 보관해두는 경루, 불경을 새긴 목판을 보관하는 장경고, 스님의 살림살이가 이루어지는 요사채 등이 세워진다.